[돋을새김] 거리두기 ‘재개’에서 배울 것들

입력 2021-12-21 04:03

두 달여 전, 이 코너를 통해 ‘거리두기를 통해 배웠던 것들’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제목에 버젓이 ‘배웠던’이라고 과거형을 썼는데, 오판이었다. 위드 코로나 돌입을 선언하면서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상황이긴 했으나 어쨌든 다시는 거리두기로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글을 썼던 데 대해 독자들께 사과하고 싶다. 우리에겐 아직 거리두기를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매일 절감하고 있다.

코로나19 국내 첫 환자 발생이 다음 달이면 만 2년이 된다. 지난 23개월 코로나 상황을 경험하면서 힘겨운 거리두기를 감내하며 우리가 배워야 했던 것 중 제대로 배우지 못한 건 무엇이었나. 출근과 재택근무가 반복되는 생활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직장인들의 고충, 등교와 재택수업이 엇갈리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보육 혼란은 차치하더라도 확산세가 거세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병상 부족 아우성은 무슨 이유인가 싶다. 많은 전문가는 공공의료 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병상과 인력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수시로 지적했고, 그때마다 정부는 확충하겠다고 되뇌었다.

그런데 지금 일선에선 병상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병상을 찾지 못한 코로나 확진 산모가 몇 시간을 헤매고, 심지어 응급차 안에서 출산하기까지 했다는 뉴스를 읽는 상황이다. 그간 수차례 대규모 확산의 파도를 넘나들면서도 자랑스러워했던 ‘K방역’의 모습은 어디로 갔나. 병상과 인력 확보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닐 터인데 2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상황은 그저 반복되고 있다.

과학계와 의학계 단체들이 이달 초 공동으로 개최했던 ‘코로나19 중환자 증가에 대한 우리의 대책은’이라는 포럼에서 김남중 서울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 전문가, 중환자 전문가를 훈련하고 교육하는 데 최소 2년이 걸린다”고 했다. 만약 코로나 확산 초기부터 전문가 양성에 돌입했더라면 지금쯤은 훈련을 받고 교육된 전문가들이 일선에서 큰 힘이 됐을 것이다.

포럼에서 백애린 순천향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전문의가 될 때 중환자 의학 세부 전공을 거의 선택하지 않고, 중환자실 간호사의 30% 이상이 수년 뒤 사직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국민일보 20일자 1면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 전담병원 등 서울 시립병원 간호사의 정원 부족 인력은 코로나 이전보다 77%나 급증했다. 일은 많은데 수당은 적어 많은 이들이 퇴직하거나 이직한 탓이다. 이런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중환자를 다루는 의사를 양성하고 간호사들이 지쳐 떠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현실적인 정책을 내놓을 기회가 지난 2년간 없었을까.

정부의 방역에 협조하느라 가장 큰 고통을 감내했던 업종의 자영업자 등에게 재난지원금을 집중 지원하면서 나머지 국민에게 갈 재난지원금 중 일부만이라도 중환자 의학을 전공하는 전문의와 중환자실 간호사의 처우 개선에 쓰였다면 상황은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중환자 전공 의사들과 중환자실 간호사들을 위해 쓰일 것이라는 이유가 제시됐다면 자신 몫의 재난지원금을 기꺼이 내놨을 국민이 적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지금껏 코로나 대응에서 공공의료의 허점을 메운 것은 현장 의료진의 헌신이었다. 그들이 몸으로 막아내지 않았다면 상황은 훨씬 이전에 이미 최악으로 내몰렸을 수도 있다. 그동안의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는 모이는 사람의 숫자를 바꾸면 한 산업이 무너질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겐 그게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배웠다. 어쩌면 이제부터의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병상과 의료 인력을 말로만 준비해서는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교훈일지도 모른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