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천지삐까리다. 삐까리는 경상도 방언으로 매우 많아 널려 있는 상태를 표현하기 좋은 단어다. 기기에 ‘스마트’ 스티커만 붙이면 스마트기기라 하지는 않는다. 사람 혹은 사물은 어떤 것을 달성하기 위해 기술과 정보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때 스마트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2014년부터 우리나라 공장을 스마트하게 만들기 위해 스마트공장 보급·확산 사업을 추진해왔다. 2022년까지 스마트팩토리 3만개 구축을 목표로 연간 4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내년 목표가 달성되면 우리나라 제조공장의 둘 중 하나는 ‘스마트공장’이 돼 스마트공장 천지삐까리 한국이라 할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공장으로 구현되는 생산의 디지털 혁신은 산업 및 비즈니스 모델 전반에 변화를 불러왔다. 소비자 취향뿐만 아니라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까지 정보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는지가 제조업체들의 경쟁력이 됐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중소기업의 디지털 혁신을 지원해 스마트공장에 대한 저변이 확산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아 관련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스마트공장이 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스마트공장에 대한 오해다. 3만개라는 개수보다는 공장이 실제 디지털 전환을 통해 얼마큼 경쟁력을 확보했는지가 중요하다.
필자는 2년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 ‘스마트공장 도입의 효과와 정책적 함의’를 통해 우리나라 제조업체 전반의 스마트 수준을 측정한 결과 2017년 기준 대다수 공장이 부분적으로 실적 정보를 관리하는 기초 수준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스마트공장이 확산된 현시점에서 제조업체의 스마트 수준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진단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스마트공장 보급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제조혁신 강국을 목표로 실제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생태계 마련에 초점을 둬야 한다.
세부적 전략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제조혁신 강국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 거버넌스 구조를 혁신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미국 공급망 전략, 프랑스 2030 계획, 중국 기술자립 산업전략 등 주요국들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산업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국 산업경쟁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빅3 신산업(미래차,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8대 선도 프로젝트, 소부장 2.0 전략, 탄소중립 기회 신산업 육성 등 다양한 방향의 산업정책이 따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정부 주도형 거버넌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협력해 전략을 개발하는 플랫폼 방식으로의 혁신적 전환이 필요하다. 독일의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참고해 한국형 ‘혁신 플랫폼’ 민관학 협의체를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협의체를 산업 혁신전략에 대한 실질 권한을 가진 기구로 구성한다. 둘째, 해당 기구는 혁신전략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혁신 로드맵을 제시하며 우리 현실을 고려한 도전 과제와 문제 해결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셋째, 워킹그룹을 분야별로 운영하고 구체적 권고 사항을 제시한다.
플랫폼 방식의 협의체는 일반적인 정부 주도 컨트롤타워와 차별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산업 혁신을 위한 전략은 정부 담당자 몇 명이 특정 시기마다 결정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혁신전략 체제의 운영 방식과 협의 구조를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효율적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김민호 한국개발연구원 재정투자평가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