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가명 3)의 목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연수의 어머니인 김정화(가명 43)씨는 인터뷰 도중 아들의 호흡이 불규칙한 느낌이 들자 이 구멍에 가래 흡입기인 석션을 연결했다. 가래를 빼는 30초 남짓한 시간 동안 아이는 몸을 버둥거리며 힘들어했다. 가래를 다 빼내자 김씨는 아들을 품에 안은 뒤 등을 토닥여주었다. “연수야,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충남 당진에 있는 연수네 아파트를 찾아간 건 지난 10일이었다. 취재 현장에는 국민일보와 월드비전이 벌이는 ‘밀알의 기적’ 캠페인에 동참한 방두석(64) 당진감리교회 담임목사도 동행했다. 그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김씨에게 연수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호흡이 아주 불규칙할 때는 식사도 힘들어요. 청력도 잃은 상태예요. 밥은 목에 뚫린 구멍을 통해 유동식을 먹는데 너무 안타까워요. 세상에 맛있는 게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연수는 아직 어떤 맛도 본 적이 없어요. 외출도 힘들어요. 차가 보이면 차도로 달려들고, 갑자기 넘어져서 바닥에 머리를 박기도 하고…. 보시다시피 저랑 아들은 종일 은둔생활을 하고 있어요. 연수는 바깥세상이 어떤지도 잘 모르는 아이예요.”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연수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 건 출산 이후였다. 임신 기간 내내 아무런 문제를 느낄 수 없었고, 출산 직후에도 다른 신생아와 크게 다를 게 없었기에 그는 연수의 건강 상태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료진은 연수의 몸에 이상이 있을 듯하다고 말하면서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검사가 끝나고 5개월쯤 흐른 뒤 통보받은 연수의 병명은 차지 증후군이었다. 차지 증후군은 태아 발달기에 장기 등에 발생한 기형 탓에 평생 고통받아야 하는 난치병이다. 김씨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김씨가 보낸 간병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던 지난 3년여의 세월이 어땠을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밤에도 틈틈이 일어나 석션으로 아들 목에 쌓인 가래를 빼줘야 했다. 2~3개월 전까지 아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현재 연수는 김씨의 극진한 간병과 병원 치료 덕분에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직장인인 남편(48)의 월급은 200만원 정도인데, 한 달에 나가는 치료비만 150만원에 달했다. 올해 각각 열한 살, 아홉 살인 딸까지 있으니 김씨 부부는 매달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편은 퇴근한 뒤나 주말에도 대리운전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각종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연수네 가족은 자가(自家)가 있다는 이유 탓에 혜택을 누릴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김씨는 “한 달에 빠져나가는 돈이 얼마인지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태예요. 은행부터 지인, 제2금융권에 이르기까지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엔 전부 빚을 지게 됐어요. 사채만 안 썼다고 보시면 돼요.”
연수의 치료를 위해 서울에도 자주 갔었다. 아픈 아이와 함께 당진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길이 부담스러워서, 꾸준한 치료가 필요해 서울에 월세방을 구해 생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형편 탓에 김씨가 구하는 집은 항상 반지하 원룸일 수밖에 없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고 습도가 높아서 연수는 폐렴이나 각종 알레르기성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는 “치료를 제대로 받으려면 서울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서울에선 직장을 구할 수가 없으니 이사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다”며 “앞으로 나 자신이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말을 듣던 방 목사는 이들 가족에게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 가정을 그래도 여기까지 지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연수가 몸도, 마음도, 영혼도 회복되는 기적을 맛보게 하옵소서. 어머님이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시고, 이들 가족을 돕는 손길이 이어지도록 해 주시고, 영원히 이들과 동행하며 보호해 주시옵소서.”
아파트를 나와 당진감리교회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방 목사는 거듭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목사로서 내가 사는 지역에 저런 가정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진감리교회와 지역의 복지재단, 당진 지역 교회들이 나눔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세운 사단법인 등을 통해 연수네 가족을 도울 방법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수가 겪는 고통이 어마어마하겠지만, 어쩌면 연수보다 더 힘든 건 연수의 엄마일 겁니다. 몸도, 영혼도 다 병들었을 텐데 아파할 겨를이 없을 거예요. 연수의 엄마도 ‘돌봄의 대상’인 거죠.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실한 희망이 있다면 인내할 힘도 생길 수 있는데, 연수네 가족은 끝이 안 보이는 싸움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네요. 하나님이 빨리 이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진=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