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부터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피신)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해 증거로 쓰이게 된다. 수사기관과 피고인이 법정에서 동등하게 다투도록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의 대원칙에 따른 개혁이다. 다만 재판이 장기화하고 공범 수사가 어려워지는 등 진통도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여러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무수한 이들이 수사와 재판을 겪으면서 굳어져 자리잡은 법조계의 관용적 표현 가운데에는 ‘조서를 꾸민다’는 것이 있다. 법률가들은 검사 작성 피신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의 이유 역시 이 입말의 근원에 있다고 본다.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주도적으로 작성하는 조서 속에는 결국 형사재판의 유죄 심증을 굳히는 내용들이 곳곳에 솜씨 있게 스며 있게 되며, 이에 기초한 재판은 수사기관 중심의 시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그간 많았다.
19일 법률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법 개정으로 추진되는 검사 피신 증거능력 제한은 결국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법정 중심에서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취지로 한다. 인적 증거를 배제하고 물적 증거를 중시하면 자백 중심의 수사 관행이 사라질 것이며, 알게 모르게 검찰 시각으로 진행되던 재판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언급된다. 한 중견 법관은 “여러 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검사 피신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일이 결국 ‘가야 할 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5년 전 노무현정부 시절 이용훈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고 말하고 공판중심주의가 사회적으로 통용된 이후에도, 검사 작성 피신은 여전히 중요한 자료로 취급돼 왔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피의자들이 조서 열람에 장시간을 투자하고 문답 내용을 암기하려 한다. 법관들은 검사 역시 재판에서는 한 당사자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정돈된 피신이 사건 얼개 파악 과정에서 유용했다고도 말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대 위에 있을 때에는 판사가 재판을 주도하는 줄 알았지만, 변호인으로 소송을 접하고 보니 그간 검사가 재판을 주도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용을 부인하는 것만으로 검사 작성 피신을 ‘휴지’로 만드는 내년부터의 일은 의외로 적잖은 변화를 예고한다. 법조계가 일단 공통적으로 예견하는 변화는 ‘재판의 장기화’다. 검사 작성 피신이 증거가 되지 않는다면 복잡한 사건의 경우 전체 모습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온라인 불법 도박, 보이스피싱 등 대규모 공범이 결부된 조직 범죄의 경우 거쳐야 할 재판 절차도 많아진다. 관련된 증인 다수에 대한 신문이 반복적이면서도 면밀히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이를 불가피한 일로 보지만, 또 한편으로는 ‘비효율적 재판 진행’이라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수사기관의 현실적 문제에 따른 ‘무죄율 상승’도 법조계는 예견하고 있다. 인적 증거를 빼고도 공소사실을 입증하려면 객관적인 물증이 수집돼야 하는데, 이것은 이상적인 목표일 뿐 지능화하는 범죄에 대응하기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범 이외의 목격자가 존재하기 어려운 마약이나 성매매, 도박 등의 사건을 현실적 난제로 거론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에서의) 진술이 다 날아간다면 남은 흔적들로 유죄 판결이 쓰이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검찰 관계자는 “물증이 구슬이라면 진술은 그를 꿰는 실과 같다”며 “조사실에서의 수싸움과 무수한 시간이 앞으로 법정에서 똑같이 재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검사 작성 피신의 증거능력 배제에 대해 대법원은 예전부터 “실무상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다만 일선에서는 형사재판에서의 진실 입증 부담을 법원에 더하는 변화이므로 법관 충원 등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검찰에서도 그간 문답식 조서를 서술식 조서로 바꾸거나, 사건에 따라 아예 조서 없는 수사를 시도하는 등 변화에 대비하는 모습이 감지됐었다. 대검찰청은 최근 일선 형사부와 공판부에 공문을 보내 개정법 시행에 대한 검사들의 우려 의견을 청취했다. 이번 변화는 그간 말로만 있던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의 도입 계기가 될 것이란 예상도 법조계에서는 나오고 있다.
특별취재팀 양민철 임주언 조민아 구승은 박성영 기자 listen@kmib.co.kr
[검찰 조서 증거능력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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