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릿 주연의 ‘타이타닉’이었다. 실제 사건에 가슴 아픈 로맨스를 더한 블록버스터, 나는 스크린과 사운드에 완전히 압도됐다. 퉁퉁 부은 눈으로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 담긴 CD도 샀다. 후에 DVD로, IPTV로도 여러 번 영화를 봤지만 극장에서 본 그날의 감동을 그대로 느끼긴 힘들었다.
대학 시절 영화관은 언제나 부담 없는 선택지였다. 멀티플렉스엔 언제나 다양한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항상 붐볐다. 심야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고 기숙사까지 걷는 일도 적지 않았다. 가끔은 영화를 보러 온 배우를 발견하는 횡재도 있었다.
입사 시험을 망쳤을 때나 대낮에 영화 한 편 보고 나서 술 한잔할 때가 많았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한 달에 몇 번은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 마시는 데이트 코스가 지겹다며 새로운 놀거리를 궁리하면서도 역시 그만한 가성비를 찾기 어려웠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도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영화를 즐기고 싶을 때, 영화관은 여전히 좋은 도피처다.
무언가가 주는 즐거움을 이야기할 때 ‘맛’보다 더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맛이 있다. 단지 커다란 스크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의 맛엔 상당히 많은 것들이 첨가돼 있다. 최상의 음향 시스템으로 즐기는 청각 요소, 같은 공간 속 다른 이들의 긴장감이 뒤섞인 공기, 팍팍한 일상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문화생활을 즐기러 왔다는 작은 뿌듯함까지.
아무리 큰 도록이라도 명화를 직접 보는 감동을 느낄 수 없듯이 아무리 훌륭한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춰도 집에선 극장 가는 설렘을 느낄 순 없다. 블록버스터는 블록버스터대로, 잔잔한 영화는 또 그것대로 극장에서만 충족될 수 있는 감각이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영화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국내 영화 업계도 2년 가까이 간신히 버티고 있다. 팬데믹 전에 제작해 둔 소위 ‘창고 영화’마저 예정대로 개봉되지 못했다. 지난해 1월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이 470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그만한 관객을 모은 영화가 없다. 올여름 ‘모가디슈’가 간신히 360만 관객을 넘겼다.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되고 극장 영업시간이 제한되자 개봉을 앞두고 있던 국내외 영화들이 줄줄이 일정을 미뤘다. 업계는 2019년 2억3000만명에 육박했던 국내 관람객이 지난해 600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밝혔다. 최근 만난 한 배급사 관계자는 “지난해는 ‘조금만 버티면 되겠지’하며 이런저런 일들을 준비했는데, 이제는 뭘 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작자들은 흥행 스코어에 대한 욕심보다는 극장 개봉 자체가 목표다. 시사회장에서 감독과 배우들은 열이면 열 “개봉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영화가 극장만을 고집하는 건 생존을 위한 묘수는 아닐 테다. 이제 제작사는 개봉 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공급을 조건으로 투자받기도 하고, 극장이 아닌 OTT 개봉으로 방향을 돌리기도 한다. 어디서도 제작비 투자를 받기 어려운 독립영화는 상황이 더 어렵다. 돈이 안 되는 영화에 OTT가 손 내밀 가능성은 희박하다. 감독과 배우들이 ‘작은 영화’를 만들어 선보일 장(場)이 사라진다면 훗날 ‘제2의 기생충’이나 ‘제2의 미나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 영화의 힘, K콘텐츠의 세계화를 말하면서 정작 영화 산업 지원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부족한 건 아닐까.
극장의 고사, 나아가 극장 문화의 고사는 영화 업계와 OTT의 상생과는 또 다른 문제다. 스크린의 감동을 경험해 본 사람은 그리워하고 아쉬워할 수 있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럴 일이 없다. ‘천만 관객’이 영화사 책에나 등장하는 표현이 될지 모른다고, 내가 극장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 든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