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 주재 미국대사 인준이 완료되면서 동북아 주요 3국 중 한국만 미국대사 부재 상태가 됐다. 주한 미국대사 공백 자체가 이례적인 일은 아니지만 아직 지명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한반도 문제가 뒤로 밀려난 것이 대사 인선에도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 상원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니컬러스 번스(왼쪽 사진) 주중 미국대사를 인준한 데 이어 18일(현지시간)에는 람 이매뉴얼(오른쪽) 주일 미국대사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지명자조차 발표되지 않았다. 해리 해리스 전 대사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함께 한국을 떠난 뒤 로버튼 랩슨 부대사가 임시로 대사직을 담당하다 지난 7월 본국으로 돌아갔고, 현재 크리스 델 코르소 부대사가 대사 대리를 맡고 있다.
외교가에선 대사 지명이 해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의회 청문회 및 표결 등의 절차까지 감안하면 주한 미국대사 공석 상태는 1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한 미국대사 인선이 늦어지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크 리퍼트 전 대사가 2018년 6월 인준되기까지도 1년6개월간 공백기가 있었다. 주요국 중 아직 미국대사 인선이 안 된 나라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한 외교 소식통은 “인준이 오래 걸린다 해도 지명 자체를 안 하는 것은 문제”라며 “바이든 정권 초 떠돌던 하마평조차 깜깜해진 건 미국 내부에서 (주한 대사 인선)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권 초기에는 유리 김 주알바니아 대사와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데릭 미첼 전 미얀마 대사 등이 주한 대사로 거론됐지만 최근 들어선 이런 하마평도 잦아들었다.
미국의 대외정책 중요도에서 북핵 문제가 뒷전임이 대사 인선에서 드러난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미 NBC 방송은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 중인 종전선언 등 한반도의 중요한 순간에 주한 미국대사의 부재가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의 동맹국 순위에서 한국이 밀려서 그런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반중 협의체 ‘쿼드’ 회원국인 인도의 경우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 최측근인 에릭 가세티 로스앤젤레스시장이 대사로 지명돼 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쿼드와 반중 안보동맹 ‘오커스’에 모두 속해 있는 호주에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인 캐럴라인 케네디가 대사로 최근 낙점됐다. 또 다른 오커스 멤버인 영국엔 바이든 대통령 정치자금 후원자였던 제인 하틀리 전 프랑스 대사가 거론되고 있다.
종전선언이나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등을 둘러싸고 한·미 간 불협화음이 잦아지는 상황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임명도 당초 미국이 대북인권대사보다 먼저 추진한 사안이 아니었으나, 우리 정부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에 동참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함으로써 성사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미국 대외정책 혼선의 일환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이 매끄럽지 않거나 글로벌 인프라 구상의 후속조치가 없는 등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부분도 주한 미국대사 인선 지연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