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후반은 한국 제조업의 구조조정 시기였다. 전북 군산의 GM 자동차공장과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문을 닫았다. 같은 시점 남해안에 즐비하게 위치했던 중소 조선소들뿐만 아니라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조선 3사도 인적 구조조정을 했다. 그 가운데 한 곳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도 했다. 청산이 아닌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회생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서 출발했다. 25만명이 사는 도시에서 대형 조선소 하나에 하루 출근하는 인원은 최대 5만명. 조선소의 고소득 정규직들이 모두 일자리를 잃고, 인접한 부품·소재·장비 회사들도 경영난으로 연쇄 도산했을 경우 지역사회에 미칠 여파를 감안하면, 몇조에서 십몇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이 합리적이라는 논리였다. 그래서 공적자금을 통해 경영 위기를 해결했고, 조선업이 기후변화 시기 강화되는 탄소 배출과 관련한 호재로 서서히 회복기에 들어선 게 최근의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방대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으나 해법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최근 입시를 통해 드러난 지방대의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구조 변동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정원 부족을 벌충해 주던 유학생이 급감한 탓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학생 중 불법체류 비율을 일정 수준 아래로 맞춰야 하는데, 새로 진입하는 외국인 신입생 자체가 줄어드니 역설적으로 불법체류 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 탓에 아예 유치를 못하게 되기도 한다. 신입생 모집이 미달되니 미달 학과들이 폐과되고 미달 학교들의 인식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현재 정원 기준으로 지방대 가운데 전체 학생들이 1만명 넘는 학교들이 많다. 지방의 인구 소멸이 가속화되고 수도권 집중이 절정에 이른 가운데 지방에 ‘온기’ 혹은 ‘젊음’을 만들어주는 거의 유일한 힘은 그런 대학교들이다. 20대 인구가 1만명 들어오고, 교직원이 2000명 정도 있다고 고려하면 대학교 하나가 미치는 영향은 조선소 하나와 큰 차이가 없다. 주변 대학가의 먹자골목, 원룸촌 모두 대학이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교육 당국의 대학에 대한 고려는 역량진단의 ‘3대 지표’(신입생 충원율, 재학생 충원율, 취업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지역사회에 대한 고려는 지자체가, 산학협력에 대한 고려는 중소벤처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가, 고용에 대한 고려는 고용노동부가 생각하면 되나? 그럼 교육부는 무엇을 고려하는가?
등록금 동결과 재정 지원. 10년간 교육부와 대학이 맺어온 관계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부터 대학기본역량진단을 거쳐오면서 대학들이, 특히 지방대들이 선택했던 방식은 ‘지표를 까먹는 학과’를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었다.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등 기초 학문의 ‘당장 취업에 도움 안 되는 학과’가 정리됐다. 학생의 진로 다양성을 떠나 최근 발생한 또 하나의 문제는 ‘전문가 풀’이다. 경남에는 사회학과가 3개 있었으나 이제 곧 2개가 되고, 부산·울산·경남을 뒤져도 (문화)인류학과는 아예 없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 자문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의 전문가를 모셔와야 한다. 인문사회계열이 아니라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인구 100만명 창원의 대학에는 도시계획학과가 없다. 박사급 전공자는 다른 지역에서 초빙해 와야 한다. 지역의 거버넌스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전문가 다양성 확보 자체가 지방대 존립과 구조조정에 연결이 돼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가 든다. 보편교육으로서의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넘어서는 영역을, 단순한 기준만으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게 맞는 일인지 고민이 든다. 대학교육은 한 축으로는 모든 연령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보다는 고등 학문의 연구자들과 정책 전문가들, 다른 한 축으로는 중앙정부보다는 지역의 교육감과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에 좀 더 높은 자율성과 자원이 배분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라는 책을 읽고 있자니 지방대생, 졸업생들의 다양한 불만과 응어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지방대, 지금처럼 ‘지잡대 청산한다’며 맡겨두기에는 훨씬 더 큰 중요성이 있다. 좀 더 많은 주체가 좀 더 시급하게 지방대 위기의 해법을 논의해야 할 이유다.
양승훈(경남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