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트렌드가 바뀌면서 저물어가는 산업이 있다. 회사의 규모가 크건 작건 내리막을 맞닥뜨렸을 때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빤히 보이는 변화의 흐름이 저 큰 회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궁금했던 때도 있었다. 관망자인 나는 이렇다 할 이해관계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 시대 변화가 여과 없이 보였는데, 투자가 많고 눈에 보이는 피해가 큰 기업 입장에선 큰 물결이 아니기를 바라고 현상을 과소평가하는 목소리가 더 듣고 싶었던 것 같다.
‘IMF둥이’로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 1999년 어느 날 인터넷상에 백화점 패션 코너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덥석 입사해 얼결에 인터넷 1세대가 됐다. 새로운 혁명적 물결에 탑승한 것 같은 흥분은 잠시뿐이었고 곧바로 주류 패션 기업들의 인터넷 쇼핑에 대한 극렬한 반감과 저항을 마주해야 했다. 한국에서 대형 패션 브랜드들은 백화점, 대리점들과 끈끈한 관계로 상생해왔다. 인터넷 쇼핑몰은 이 관계를 위협했고, 컴퓨터 화면만 보고 옷을 산다는 건 어린 애들이 돈을 아끼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어리석은 짓으로 폄훼 당했다. 옷이란 눈으로 보고 입어봐야 하는 건데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옷을 구입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몇 년 전 4차 산업혁명 물결에 패션 업계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 대기업 임원이 우리는 아직 3차 산업혁명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4차 산업혁명은 어찌해야 할지 사실 얼떨떨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무려 20년이 흐르는 동안 인터넷 혁명을 외면해오다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확산 상황으로 패션 업계는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리 대비하지 않은 채 급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실행하느라 서비스와 타깃 소비자가 어긋나고 회사 운영 시스템과도 잘 안 맞는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최신 트렌드와 정보를 제일 먼저 접하는 대기업에도 변화는 이렇게 어렵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