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족의 과거’만 따지는 선거판

입력 2021-12-18 04:01
대통령 선거판이 여야 후보 가족을 둘러싼 논란에 뒤덮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문제가 불거지기 무섭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아들의 도박 문제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이 김씨의 행위를 “사문서 위조”라고 공격하자 국민의힘은 이 후보 아들의 행태를 “실형감”이라고 비난했다. 김씨 경력과 관련된 논쟁은 며칠째 선거판 최대 이슈로 머물러 있고, 이 후보 아들은 도박 이슈가 부상하면서 다른 행적도 연이어 들춰지는 중이다. 여야 후보 모두 가족 문제에 휘말린 터라 누가 더 빨리 사과하는가, 사과하는 태도가 어떠한가로 차별화하려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대통령을 뽑는 건지, 대통령 가족을 뽑는 건지 알 수 없는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후보들이 꺼낸 정책과 공약은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책 경쟁의 실종을 부르는 가족 논쟁을 보며 “이러다 가족 리스크가 대통령을 결정하겠다”는 위기감마저 퍼져 간다.

이번 대선은 시작부터 비호감 선거였다. 양강구도를 형성한 이·윤 후보의 비호감도는 나란히 60% 안팎에 놓여 있다.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의 유권자들은 이제 후보 가족의 흠집을 경쟁하듯 들춰내 비난하는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을 지켜보게 됐다. 지금 한국 사회는 향후 수십년의 행로가 걸린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미·중이 첨예하게 대결하는 국제 지형에서 경제와 안보의 활로를 찾아야 하고, 사회 양극화와 갈등구조를 풀어야 하며, 인구 위기, 기후 위기, 코로나 위기 등 당면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대선은 이런 것을 위한 미래 비전이 제시되고 사회적 합의에 다가서는 시간인데, 지금 선거판은 후보 가족의 과거 행적에 매달려 있다. 대선의 수준이 너무 낮아졌다.

비호감 선거판, 가족 리스크 선거판이 돼버린 근본 원인은 극단적인 진영 대결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사회를 양분하는 두 진영 사이에 언제부턴가 상대를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여기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그것은 정치적 논쟁에 적개심을 불어 넣으며 수단을 가리지 않는 네거티브 공방을 가열시켰다. 이런 갈등의 골을 메우고 통합을 외쳐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편승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지금 여야 선거캠프에선 진영 대결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네거티브 메시지가 연일 생산되고 있다. 이런 식의 선거로는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두 후보는 이 상황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