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상여금도 통상임금”… 대법원, 現重노조 손 들어줬다

입력 2021-12-17 04:02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들이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통상임금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지를 두고 현대중공업 노사가 진행한 6300억원 규모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명절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9년 만에 사실상 승리했다. 대법원은 사측 손을 들어준 2심 판결을 뒤집어 명절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이 판결에 따라 근로자들에게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더라도 중대한 경영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고 봤다.

이번 사건은 근로자들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되는지를 놓고 심급마다 판결이 엇갈렸다. 대법원은 신의칙 위배 여부를 판단할 새로운 기준으로 일시적 경영악화만이 아닌 기업의 계속성, 수익성, 경영상 어려움을 제시했다. 패소 확정 시 현대중공업이 근로자들에게 지급할 임금 소급분은 약 6300억원으로 추산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의 전·현직 근로자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2년 12월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이후 약 9년 만이다. 소송의 첫째 쟁점은 명절 상여금을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으로 볼 것인지였다. 둘째 쟁점은 회사의 재정 부담을 낳을 근로자들의 주장이 과연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춰 용인될 수 없는 것인지였다.

대법원에서만 5년 10개월이 소요된 논의의 결론은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2심과 달리 명절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했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노사의 묵시적 합의에 따라 퇴직 근로자에게는 명절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근거 자료가 모두 품의서 등 내부 작성 자료에 불과하고 회사 공지나 근로자의 인식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설령 그러한 관행이 있었다 하더라도 개별 근로자의 근로계약 내용이 되진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또 근로자들의 주장이 신의를 저버리는 권리 행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향후 이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명절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2009년 말부터 2014년 5월까지 소속 근로자 3만8302명에게 6295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며 경영 위기를 호소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추가 부담이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는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현대중공업의 사업 규모와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 손익 추이, 경영성과의 누적 상태 등을 종합 고려한 판단이라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사측의 경영상 어려움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경영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2014년은 소송 제기부터 1년 이상 지난 다음”이라고도 지적했다.

기업의 신의칙 항변을 엄격하게 판단하고 통상임금 배척에 신중한 대법원의 기조는 상고심에 계류된 다른 기업들의 사건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재계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법원은 해외 경제상황 변화와 이에 따른 영향을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영역으로 판단하나, 오늘날 산업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통상임금 관련 소모적 논쟁과 소송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구승은 김지애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