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역 사과,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서 했어야

입력 2021-12-17 04:03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일상회복 중단과 고강도 거리두기 복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일상회복 준비가 충분치 못했고 다시 방역을 강화해 송구스럽다”고 했다. 이 메시지는 형식부터 심각하게 잘못됐다. 하루 확진자가 8000명, 위중증이 1000명에 육박하고, 위독한 이들이 병상을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티타임’ 중에 이런 말을 했다. 그것을 전하는 청와대도 ‘브리핑’이란 형태로 겨우 너덧 문장을 건조하게 전달했을 뿐이다. 그 브리핑은 질의응답을 포함해도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이 말을 하면서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뉘앙스를 담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불과 몇 주 전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은 “하루 확진 1만명까지 대비했다”고 자신했다. 생중계된 그 말을 믿은 국민들이 철저히 뒤통수를 맞은 상황인데, 경위를 설명하는 자리에 대통령은 모습도 목소리도 없었다.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있다.

온 국민의 일상이 뒤바뀌고, 소상공인은 다시 벼랑에 내몰렸다. 만삭의 확진 산모가 분만실이 없어 10시간을 진통하며 헤매고, 치료도 못해본 채 가족을 보낸 이들이 화장터마다 오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직접 국민 앞에 나와 정식으로 사과해야 했다. 자랑할 때는 직접 나서고 사과할 때는 뒤로 빠지는 습관적 행태가 되풀이됐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대통령의 직접적인 책임도 가볍지 않다. 보름 전 방역회의를 주재하며 “일상회복을 되돌려 후퇴할 순 없다”고 못 박는 통에 대처가 늦어진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를 의식했는지 김부겸 국무총리는 거리두기 강화안을 밝히며 “후퇴가 아닌 속도조절”이라고 강변했다. 대통령 체면을 세우려는 말장난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총리는 국민을 향해 “함께 극복하자” “화답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방역수칙부터 백신 접종까지 한국인만큼 잘 따라준 국민이 또 있다면 한번 말해보라. 지금은 정부가 제 역할을 잘해야 할 때다.

K방역의 추락이 ‘정치방역’ 때문이란 지적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코로나 초기에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비롯해 전문가들이 객관적 정보와 판단을 전하며 나침반 역할을 했다. 언제부턴가 이런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렸고, 방역 향방을 알려면 청와대를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통령이 코로나를 말하면 매번 반대 상황이 벌어지던 불행한 공식도 과학의 영역에 정치가 너무 깊이 개입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해법은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