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아전인수 말고 역지사지

입력 2021-12-18 04:02

최근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종인 오미크론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서방의 이기적인 백신 비축으로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한 백신 접종 노력이 실패한 결과가 오미크론 사태를 불러왔다고 분석한다. 지금까지 생산되는 백신의 89%를 주요 20개국이 독점해 왔고, 현재 생산 중인 백신의 71%도 이들 나라와 이미 계약돼 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백신 쏠림이 바이러스의 진화와 확산 토대를 마련해 줬다”고 보도했다. 오미크론이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뼈아프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의 ‘인기’가 식질 않는다. 최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전두환 경제 성과 인정’ 발언을 두고 벌어진 공방에서 어김없이 등장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발언을 했을 때 여권의 집중포화를 기억한다면 이 후보의 발언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이 후보는 앞뒤 자르고 비판한다고 반박했지만 윤 후보에 대한 비판도 앞뒤가 자르고 나온 것이었다.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의혹에 대한 국민의힘 쪽 대응도 내로남불 쪽으로 흘렀다. 김씨가 2007년 수원여대 겸임교수 임용에 지원할 때 지원서에 허위 경력을 기재했다는 의혹에 윤 후보는 “(당시) 관행이나 현실을 보라”고 반박했다. 겸임교수 선발은 정규직 교수를 뽑을 때처럼 엄격한 절차가 없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들에게 들이댔던 엄격한 잣대는 잊은 듯하다.

인간은 늘 이기적이다. 우리 모두가 아닌 내가 우선이다. 정의가 자기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행동은 더욱 과감해진다. 하지만 그 결과가 결국 나에게 득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개인뿐 아니라 조직과 나라도 그렇다.

얼마 전 출석하는 교회의 설립 1주년 감사예배가 있었다. 교회는 한 교회에서 분리해 나왔다. 자세히 설명하기 힘든 분란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1년이 지났다. 그 모든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였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 제목은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노라’였다. 성도들은 지난 1년을 회상하며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 찼다. 이날 본문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로 시작하는 이사야 41장 10~13절. 고난을 일상으로 겪는 많은 크리스천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 중 하나다.

본문 말씀에서 유독 내 귀에 꽂힌 부분이 있었다. 하나님이 나, 우리와 함께한다는 ‘긍정’의 말씀이 아닌 나, 우리와 대적하는 그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부정’의 말씀이었다.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부분은 SNS 프로필 문구로도 올려놨다.

며칠 말씀을 곱씹던 중 한 생각이 스쳤다. “나와 다투는 자들도,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있지는 않을까. 그들도 하나님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원망과 분노가 나를 향하고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사야 본문 말씀은 새롭게 마음에 들어왔다. 나도 누군가의 적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편일 수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교만이다. 지금도 프로필 문구는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처음과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크리스천들은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끼리’라는 속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교회 밖에서 크리스천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배타적’이라는 단어다. 같은 교회에서도 누구 편, 누구 편으로 나뉜다. 말씀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은 항상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고 말씀하신다. 황금률로 불리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윤리 기준이다. 너도나도 아전인수(我田引水) 하는 세상이다. 더더욱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한 때다.

맹경환 뉴콘텐츠팀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