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고르지 않은 말

입력 2021-12-17 04:03

주택이 밀집된 지역에 살고 있다. 사람이 촘촘히 모여 살다 보면 소음 문제, 주차 문제, 쓰레기 문제 등으로 마찰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1인 가구 가장으로서 우리 집을 대표해 이웃과의 갈등을 해결할 중책을 맡고 있다. 문제는 우리 집 리더가 갈등 상황에서도 말을 고르고 고르느라 제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내가 사는 빌라 입구에 누군가 음식물을 분별없이 버려 골치를 썩였던 적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당연히 지정된 비닐봉지에 담아 전용 수거함에 넣어야 하는데 우리의 몰지각한 이웃은 막무가내였다. 아무 봉투에나 수박 껍질을 잔뜩 담아 버리기도 했고 먹다 남은 피자가 들어 있는 피자 상자, 시뻘건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배달 떡볶이 용기까지 멋대로 내놓았다. 당연히 악취와 벌레가 들끓었다. 출근길 혹은 퇴근길에 그것을 볼 적마다 인류애가 바닥에 떨어지고 분노가 이마까지 치솟았다.

익명의 이웃을 향해 벽보라도 써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도 문장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다정한 어조로 쓸까, 건조한 문체로 쓸까, 분노의 목소리를 낼까, 신고한다고 협박할까? ‘음식물은 골목 모퉁이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같은 평이한 문구부터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당신의 양심에서 악취가 납니다’ 같은 과감한 비난까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문장을 다듬으며 시간만 보내는 사이 집 앞은 난장판이 돼갔다. 그러던 어느 퇴근길, 로비에 누군가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대충 찢은 쪽지에 휘갈겨 쓴 문구는 이것이었다. ‘여기 음식 버리면 건물에 바퀴벌레 생김’. 브라보! 명료하면서도 설득적인 문구였다. 굽신대지도 화내지도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 음식물 쓰레기는 종적을 감췄다. 아마도 ‘너도 피해 볼 수 있다’는 말이 효과를 냈다고 본다.

지난가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집 앞에서 한밤중 누군가 몇 시간이나 큰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취기가 가득했다. 건물이 빼곡한 골목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아무도 없어 보여도 창 너머엔 사람들이 있고, 목소리는 깔때기처럼 남의 집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나직하게 말을 해도 토씨 하나까지 또렷이 들려 놀라울 지경이다. 덕분에 수많은 이웃이 취객이 말린 혀로 언성을 높이고, 중간중간 술 취한 한숨을 토하며, 했던 말을 거듭하는 것을 오래도록 듣고 있었다.

새벽 1시를 넘어가자 화가 치솟았다.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이 치밀어 창문 너머로나마 주의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집 대표는 역시 생각이 많았다. 불편한 대화이니만큼 후다닥 의사를 밝히고 어둠 속에 숨고 싶었기에 나의 말은 짤막하면서도 강력해야 했다. ‘시끄러워요!’라고 하면 너무 무례할까? ‘저기요, 목소리 다 들립니다’라고 하자니 다소 긴 문장이라 긴장되는데. ‘딴 데서 통화하세요’ 정도로 짤막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건?

내가 그렇게 숱한 말을 입안에서 굴리는 동안 어느 집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그리고 한 이웃이 이렇게 소리쳤다. ‘조용!’ 까만 밤에 로켓처럼 발사된 짧고 강력한 외침이었다. 그 단 두 글자에 취객은 놀랍도록 신속하게 사라졌다.

카피라이터로 또 시인으로 다양한 글을 쓰며 말을 고르고 고르는 것, 단어를 살피고 살피는 것이 직업이자 생활이 됐다. 하지만 때로는 생각한다. 내가 말을 궁리하고 벼르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이 누군가는 단호한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는구나. 그 말은 적절한 타이밍에 내뱉어졌기에 엄중하고 강력하구나. 어쩌면 내가 갈등 상황마다 겹겹의 생각 뒤에 숨는 건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그것도 누구보다 내가 앞장서서 해야 한다는 억울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럴 때 누군가는 외친다. 다소 거친 화법일지언정 빼곡한 생각 대신 또렷한 목소리를 낸다. ‘조용!’

홍인혜(시인·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