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큰 목소리

입력 2021-12-17 04:05

며칠 전 제주는 날씨가 포근했다. 동네 삼촌들과 함께 단골 식당에서 아점을 먹고 나오다 바로 옆에 오일장이 섰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오일장에 나들이나 가자고 갑자기 제안했다. 특별히 필요한 것은 없었지만 모처럼 햇살 좋은 한낮에 어디든 어슬렁거리고 싶은 맘이 일었던 것이다. 호떡을 사고 우도 땅콩을 한 줌 얻어먹기도 하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찰나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상인이 각자 자기 가게 안에 앉은 채로 큰 목소리로 다투고 있었다. 그 주변 사람 얼굴들이 딱딱하게 긴장돼 있었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큰 목소리를 내본 적이 별로 없다. 주변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강연도 하지만 그것은 나의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을 때 나는 조금도 주목받고 싶지 않다. 하다못해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문이 닫힐라치면 “잠깐만요!” 하고 외칠 줄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이 기질이 조금씩 거슬린다. 불편합니다, 부당합니다, 바꿔주십시오…. 크게 말해야 할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마다 약간씩 속이 상한다. 얼마 전에도 나는 ‘큰 목소리’의 도움을 받았다. 나를 포함해 몇십명 되는 사람이 한 시간 가까이 어떤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다가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어떤 아저씨께서 큰 목소리를 냈다.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우리가 공연히 여기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 이렇게 기다린 사람들은 뭐가 되냐. 여기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진료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내고 싶었던 목소리였다.

시장의 두 상인은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저 둘 다 성격이 급한 것일 뿐이었을까.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빠르게 내뱉는 그들의 제주어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