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할 병상조차 없다” 재난같은 응급실 상황

입력 2021-12-16 00:02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15일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 음압병동 안에서 진료를 보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기준 중증환자 병상 가동률은 전국 81.4%, 수도권 86.4%를 기록했다. 권현구 기자

최근 서울 지역 한 119안전센터에 ‘코로나19 확진자인 60대 A씨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실신했다’는 응급신고가 들어왔다.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야 했지만, 출동할 수 있는 구급대원이 1명도 없었다. 전원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현장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결국 다른 지역 센터의 지원을 받아 겨우 A씨 집에 도착했지만 이번엔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당뇨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A씨는 대기가 길어질수록 상태가 악화됐다. 20시간가량이 흐른 뒤에야 병상이 나온 한 병원 응급실에 들어갔지만, 이미 환자는 맥박이 희미한 위중증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당시 출동한 구급대원은 15일 “1분도 못 쉬고 병상을 찾기 위해 전화를 20통씩 돌리며 고군분투해도, 경증으로 보이던 환자가 이송 중 의식을 잃으면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사망자 수도 고공 행진하면서 응급 의료 현장은 거대한 재난 상황을 방불케 한다. 발생 신고부터 구급 출동·이송, 응급실 입원, 치료로 이어지는 시스템 전 과정이 코로나에 짓눌려 허덕이는 모습이다.

요즘 구급대원들의 단체대화방에는 ‘○○병원 격리실 풀(FULL·병상 없음)’ 같은 메시지가 수시로 오가고 있다. 현장에 출동해 환자를 이송하려고 해도 병상이 없어 구급차에서 몇 시간을 대기해야 하고, “병상이 없다”는 보건소·병원 측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허다하다고 하다.

환자가 구급 차량 ‘갈아타기’를 하며 노상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잦다. 구급 차량의 음압시설은 최대 4시간까지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한 구급대원은 “갈 곳 없이 대기하고 있을 땐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기가 면목 없을 때가 많다”며 “병상 확보에 2~3일이 걸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에 거주하는 B씨는 병원 40곳으로부터 입원을 거절 받고 41번째에야 치료를 받았다. 서울 지역 한 응급실 수련의는 “병원에는 이미 코로나19 환자가 깔려있어 응급실이 입원실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구급대원은 “수도권에 병상이 없어 전남이나 부산으로 갈 때도 있고, 길에서 맴돌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려보낼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병상이 나도 구급차가 ‘만차’인 경우도 많다. 최근 급격히 상태가 악화한 위중증 환자 C씨는 수도권에 병상을 배정받고도 구급차가 없어 곧장 이동할 수 없었다. 그는 4시간이 지나서야 구급차에 올랐다.

최근 서울에 거주하는 D씨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심정지가 왔다. 구급대원들은 “지금 병상이 없다”는 회신에도 “살려야겠다”며 응급실에 무작정 D씨를 밀어넣었지만, 음압 격리 병상이 가득 차 있던 탓에 그는 결국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고 숨졌다. 서울 지역 한 대학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는 환자를 보고도 병상이 없어 치료할 수 없을 때 ‘내가 의사가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령의 위중증 환자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는 일부 병원은 ‘연명치료를 포기한다’는 서약서를 받고 입원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 기기가 부족해 60세 이상 환자는 ‘에크모(ECMO·인공심폐장치) 금지령’을 내리는 곳도 있다.

코로나19가 아닌 일반 중환자는 뒷전으로 밀리는 양상도 보인다. 서울의 한 공공의료기관 응급실 관계자는 “교통사고 환자나 골절 환자 등은 현재 받을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심정지 환자를 심폐소생술할 병상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의료진은 “최근 일반 환자를 진료했다가 ‘상황이 이런 데 돈을 벌려고 하냐’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박민지 신용일 김판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