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 결정 안 뒤집힌다는 교훈 남길 순 없다” 선그어

입력 2021-12-16 00:03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정답 결정 취소 소송 선고와 관련한 입장문 발표 전 인사하고 있다(왼쪽 사진). 정답 취소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이 이날 원고 승소 판결 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취재진에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최현규 기자

‘수험생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파고들수록 불리해진다는 결론을 내릴 순 없다.’

법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을 취소한 이유는 이렇게 요약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15일 수험생들이 낸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기존 정답을 고집한다면 평가원 문제에 오류가 있더라도 뒤집히지 않는다는 교훈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우선 문제 자체에 오류가 있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문제가 제시한 조건을 사용해 동물 집단 개체수를 계산하면 특정 유전자형의 개체수가 음수(-)가 나오는데, 동물 집단의 개체수가 음수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주어진 조건이 모순되게 제시됐다”며 “문제에 객관적 하자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문제에 오류가 있더라도 정답 선택에 장애를 줄 정도는 아니다”는 평가원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가원 측은 변론 과정에서 의도한 풀이방법대로라면 음수값이 도출되는 혼란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웠었다.

이에 재판부는 “평가원이 제출한 문제풀이 방식이 유일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수험생이 논리성·합리성을 갖춘 다양한 풀이법을 수립한 경우 정답이 도출되도록 문제를 구성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통상적으로 수험생은 제시된 조건이 문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 본인 실수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따라서 조건이 잘못 제시된 것은 평균적 수험생 입장에서 올바른 답을 선택하는데 실질적 장애가 되기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20번 문제는 수능시험 문제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평가원 결정대로 정답을 5번으로 고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유의미한 실력 차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만약 정답을 5번으로 유지한다면 수험생들은 앞으로 오류를 발견해도 출제자의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수능을 준비하면서 출제자가 의도한 특정 풀이 방법을 찾는 것에만 초점을 두게 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