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사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101세로 사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김정은 동지는 김일성훈장, 김정일훈장 수훈자이며 공화국 영웅인 김영주 동지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 화환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영주 동지는 당과 국가의 중요 직책에서 오랫동안 사업하면서 당의 노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으며, 사회주의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고 우리 식의 국가사회제도를 공고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낸 화환은 14일 전달됐다.
1920년생인 김영주는 권력 핵심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지낸 김일성 시대 2인자였다. 그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서명했으며, 이 성명의 이행을 위해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실세였다.
특히 김영주는 형인 김일성의 우상화 작업을 적극 추진했다.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기반이 된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은 1967년 김영주의 제청으로 당 중앙위 제4기 16차 전원회의에서 의제로 채택됐다. 이후 김정일 주도하에 1974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란 이름으로 공포됐다.
1973년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하면서 김영주는 권력 다툼에서 밀렸다. 그는 모든 직책을 내놓고 일가족과 함께 오지인 자강도 강계로 사실상 유배됐고, 측근 간부들도 모두 좌천됐다. 1993년 국가부주석과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돼 정계에 복귀했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없었다.
수십 년간 세상에 나오지 않고 칩거하던 김영주가 마지막으로 대중에 노출된 건 2015년 7월 19일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 때였다. 조선중앙TV는 그가 투표를 마친 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향해 절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2인자의 위세는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김영주는 조카 김정일(2011년 사망)보다 10년을 더 살았다. 오는 17일이 김정일 사망 10주기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