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 조건부 승인? 우려가 짙어진다

입력 2021-12-16 04:03
대한항공 에어버스 330. 대한항공 제공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교각살우(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30일에 공정거래위원회를 겨냥해 두 번째 유감을 표시했다. 지난해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을 결정한 지 1년이 넘도록 기업결합에 진척이 없는 걸 두고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지난 9월 이 회장이 공정위를 향해 쓴소리를 한 뒤 몇 가지 변화는 있었다. 베트남 경쟁당국이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필수신고국가가 6개에서 5개(한국 미국 EU 일본 중국)로 줄었고,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는 악화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1344%에서 지난 3분기 3688%까지 3배 가까이 치솟았다.


올해 들어 3분까지 매출과 영업이익은 늘었지만 ‘속 빈 강정’이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15일 “심사가 길어질수록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깊어지고 통합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지금은 화물로 수익을 낸다고 해도 오래 지속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항공사·공항 경쟁력 '동반 약화' 우려

현 시점에서 항공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이다. 통합항공사의 운수권(다른 나라 공항에서 운항할 수 있는 권리)과 슬롯(항공사가 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을 조정하는 조건을 달 것이라는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

공정위 결정이 늦어지는 것도 경쟁제한성 해소를 위한 ‘적절한 시정조치’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정조치로 운수권과 슬롯에 제한이 생기면 항공편 운항 감소로 이어진다. 이는 일자리뿐 아니라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대한항공이 “통합 후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운항 항공편이 줄면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렵다. 또 두 회사의 점유율이 높은 노선의 운수권 및 슬롯을 회수하더라도, 그 회수분을 한국의 저가항공사(LCC)가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혜택은 외항사에 돌아간다. LCC는 대형항공사(FSC)와 달리 운항하는 비행기가 대부분 A320, B737 같은 중·단거리용이다. 중·장거리 노선 운항이 불가하거나 경제성이 떨어진다.

단순히 외항사 배만 불리는 게 아니다. 더 큰 후폭풍이 들이닥칠 수 있다. 항공업계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해운업계에서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이 되풀이되는 걸 우려한다.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105만 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에 달했던 국적선사 선복량은 46만 TEU까지 급감했다. 이 때문에 올해 내내 수출기업들을 고통스럽게 한 물류대란에 한진해운 파산이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 교수는 “한진해운이 갖고 있던 네트워크는 현대상선이 아니라 머스크 같은 외국선사들이 다 가져갔다.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면 결국 한진해운 사태를 반복하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한국의 국제선 관문인 인천공항 경쟁력이 함께 약해진다는 위기감도 크다. 항공업은 네트워크 산업이기 때문에 통합항공사가 운수권 및 슬롯을 많이 확보할수록 인천공항 환승수요도 늘어난다. 2019년 기준 인천공항의 환승률은 11.8%다. ‘허브공항’으로 불리기 위한 최소한의 환승률(20% 이상)에 미치지 못했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에서 인천, 인천에서 미국으로 가는 노선을 통합항공사가 많이 확보하면 동남아발 미국행 승객을 인천공항에서 환승시킬 수 있다. 이 경우 환승객은 자연스럽게 인천공항을 이용하게 되니 항공사와 공항이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운수권 및 슬롯에 제한을 받으면, 그만큼 환승객을 유치할 수 없게 된다. ‘규모의 경제’ 실현도 어려워진다.

항공업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자국 허브공항에서 국적 대형항공사의 슬롯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는 걸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9년 기준으로 델타항공의 애틀랜타공항 슬롯 점유율은 79%, 루프트한자의 프랑크푸트르공항 슬롯 점유율은 62%, 에어프랑스의 파리공항 슬롯 점유율은 49%에 이른다. 이와 달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천공항 슬롯 점유율은 합쳐서 39%에 불과하다.


"운수권, 외항사 넘어갈 일 없게 할 것"

항공업계의 우려, 항공산업의 위기감 등을 감안해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공정위에 업계 입장을 전달하며 양측의 입장차를 좁혀나가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소한 우리 항공사의 운수권이 외항사에 넘어가게 되는 일은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국 (M&A로) 소비자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니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꼭 운수권 회수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식의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통합항공사 출범에 따른 독과점 노선의 운임인상 우려를 놓고는 ‘제한이 필요하다’는 쪽과 ‘이미 완전경쟁 상태이기 때문에 급격한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쪽으로 전문가 의견이 엇갈린다. 국토부는 지난 6월 말 ‘국제노선 통합관리시스템 구축’ 용역에 착수했고, 내년 1월 29일 완료를 앞두고 있다. 통합관리시스템을 만들어 국제선 노선별 운영상황을 점검하고, 지나친 운임 인상·인하를 파악해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