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떤가요. 혹시 이런 단어를 들어본 일이 있나요. ‘한남충’ ‘김치녀’ ‘페미나치’ ‘틀딱’ ‘좌빨’ ‘흉자’. 이 단어들은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악한 차별과 비하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이 선거를 앞두고 유튜브나 SNS를 온통 도배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가르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젠더와 세대, 이념, 지역 갈등에 빠져 갈가리 찢기고 나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 사회와 교회를 향해 환대를 명령하십니다. 대부분 환대를 손님 대접 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글 성경에서도 환대를 의미하는 희랍어 ‘필로크세니아(φιλοξεν α)’를 손님 대접이나 나그네 대접으로 번역을 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환대는 손님 대접 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환대를 가장 잘 번역한 말씀이 베드로전서 4장 9절 말씀입니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공동체 안에서 불평하지 않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한다는 건 단순한 접대가 아니라 상대의 인종이나 성별, 사상과 같은 걸 따지지 않고 그 존재 자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그 권리를 부여하는 걸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를 살펴보면 이런 환대가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직업이나 사상에 상관없이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제자 중에는 세리 마태도 있었고 열심 당원인 시몬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비춰본다면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던 친일파와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던 독립군이 제자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시몬이 볼 때 마태는 단칼에 쳐 죽여야 할 매국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너희가 가지고 있던 이데올로기나 철학, 이 땅의 가치를 버리고 서로 환대하고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전혀 새로운 가치관인 하나님 나라의 사상으로 전에는 사랑할 수 없고 하나 될 수 없던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의 지체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환대입니다.
신약성경의 대표적 식탁 교제 이야기인 오병이어 기사는 예수님의 환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식탁에 초청한 무리는 ‘오클로스( χλο )’였습니다. 오클로스는 노예나 강제 노역자처럼 국가에 대한 적절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지 못한 자들로서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정복국가의 밑바닥 사람들로 경제적 착취와 억압의 희생자들이었고,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 권력자들에게 죄인 취급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인 오클로스와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눴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이런 식탁 교제를 ‘심포지엄(symposium)’으로 묘사합니다. 그리스·로마 시대(그레코로만) 심포지엄은 사회의 신분 구조를 잘 보여주는 기능을 합니다. 누워서 대접받으며 음식을 먹는 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고, 서서 음식을 제공하고 시중드는 사람은 지위가 낮은 노예들이었습니다. 오병이어 이야기에서 음식을 받기 위해 누운 사람들은 오클로스들이고, 서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제자들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낮고 낮은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과 함께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환대 사역이고 종의 모습으로의 섬김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주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던 것처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대림절에 환대를 명령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길 소망합니다.
박강민 목사(서울 일신교회)
◇예수님의 이야기로 가득한 일신교회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다. 젊은이를 새 시대의 일꾼으로 세우기 위한 비전을 품고 담임목사 부부가 개발한 ‘하잉 RTA(CTS기독교TV 방영 중)’ 영어 성경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세대가 행복한 교회로 세워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