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취약계층을 위한 대출 원금 및 이자에 대한 상환 유예 지원 건수가 1년 6개월 만에 100만건을 넘어섰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빚 폭탄’으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대출 원금상환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신청 건수는 105만8000건(261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취약계층 금융지원 첫 시행 이후 1년6개월 만에 100만건을 넘어선 것이다. 올해 1월(44만1000건·130조4000억원)과 비교해봐도 배 이상 늘었다. 잔액 기준으로 시중은행이 166조6000억원(68만1000건), 정책금융 93조원(32만8000건), 제2금융권이 1조7000억원(4만8000건)이었다.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는 코로나19로 재정적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됐다. 취약계층이 팬데믹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지만, 문제는 상환 능력이다. 원금을 탕감해주는 것이 아닌 이상 언젠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상환 유예된 빚을 갚아야만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자영업자들이 빚으로 간신히 사업을 연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대출 회수가 가능하겠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이 같은 정책지원의 여파로 은행권의 대출 연체율이 과도하게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25%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직전인 2019년(0.36~0.52%)과 비교하면 최대 절반가량 감소한 수치다. 금융지원이 종료되고 연체율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대출이 급격히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현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금융지원 대상 구조조정’이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대출 상환 능력을 평가해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을 종료하는 것이다. 정책지원에 의존해 사업을 이어가는 ‘한계기업’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경제적 타격은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기에 이들의 반발을 뚫고 지원을 종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있는 등 정치적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정부로서는 금융지원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국도 ‘빚 폭탄’에 대한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금융위는 내년 3월 만기연장·상환유예 종료를 앞두고 소상공인의 경영·재무상황 정밀 분석에 착수한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상환 연기 종료 후 연착륙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훈 김경택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