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스토킹 피해자와 가족이 잇따라 무참히 살해됐다. 지난달 스마트워치를 찬 여성이 옛 애인에게 피살됐고, 지난주에는 신변보호 여성의 어머니가 당했다. 경찰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나자 스토킹에 시달리는 이들이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상담기관에서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며 법적 절차를 준비하던 피해자들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스토커를 자극해 더 큰 폭력을 당할까 봐” 주저하게 됐다고 한다. ‘신고해도 죽는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 상담사는 “법에 따라 처벌하는 과정을 거치며 상처가 치유되는데, 지금은 피해자에게 신고하자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찰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을 넘어, 경찰에 알렸다가 더 큰 화를 입는다는 공포에 범죄 피해자들이 움츠러들고 있다. 경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13일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신고가 폭증했고 신변보호 요청도 올해 크게 늘었는데, 똑같은 인력과 조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이유를 댔다. 궁색한 변명이다. 변화하는 치안 수요에 미리 대처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일 뿐이며, 기능이 떨어지는 스마트워치를 방치한 태만과 닷새 전 성범죄 신고를 받고도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한 무능을 합리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경찰이 정작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인력타령, 예산타령에 앞서 뼈를 깎는 자성이 있어야 한다.
치안업무의 초점을 피의자 검거에서 피해자 보호로 옮겨야 한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피해자 중심주의가 필요한 범죄는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국회도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어렵게 하는 법과 제도의 개선을 서두르기 바란다.
[사설] 경찰 믿을 수 없어 스토킹 범죄 신고 꺼리게 됐다니
입력 2021-12-15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