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는 이장 선거를 했다. 투표소 하도리사무소와 인근 도로는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타고 온 승용차·화물차로 주차 공간이 부족했고 선거인, 후보를 도운 지지자 등이 군데군데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사무소 앞에 이렇게 많은 주민이 모이는 일은 연중 한두 번 있는 일이다. 잔치 분위기랄 수는 없고 가끔 웃음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긴장된 분위기가 이어졌다. 후보들은 하루 종일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주민들에게 인사하느라 밥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내년 1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이장 선거에는 두 명이 입후보했다. A후보는 57세, 건축물 페인트 사업을 한다. B후보는 52세, 농업인이다. 두 후보 모두 마을 동장을 역임하며 열심히 일했다는 평을 받았고 배우자들은 경로잔치, 경조사 등 마을 일이 있을 때마다 내 눈에도 띌 정도로 봉사활동을 했다. 후보자가 특별히 내가 누구다 하고 주민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다. 후보자가 마을 일에 참여하고 배우자가 봉사한 것을 주민들은 다 보고 알지만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는 모습을 봤던 사람들이라 속내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선거 결과는 투표가 완료되고 1시간여 지나 바로 나왔다. 페인트 사업을 하는 연장자 A후보가 10% 정도 표 차이로 당선됐다.
이장 선거에는 선거공보가 없다. 정견 발표도 없다. 그래서 후보자가 이장에 당선된 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선거운동이란 선거권자가 집에 있는 이른 아침 또는 저녁 시간에 집으로 찾아가 나를 찍어 달라고 안면 힘을 빌려 부탁하는 게 전부였다.
현 이장은 임기 2년을 3연임해 6년 동안 유임했다. 선거 이슈는 자연스럽게 현 이장의 공과에 대한 판단으로 흘렀다. 현 이장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방향을 바꿀 것인지로 갈렸다. A후보는 리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B후보는 리 사업에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투표자들은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그룹과 현 체제에 부정적인 그룹으로 나뉘었을 것으로 읽힌다. 결과는 유권자들이 현 이장의 치적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제주도에서는 친소 관계를 나타내는 ‘괸당’ 여부가 더 우선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장 선거권자는 하도리 주민이 아니라 행정호수 중 등록된 세대주 1인에게 주어진다. 행정호수란 주민등록 거주민과 별개로 마을 단위 동이 거주 기간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를 마을총회에서 인정한 자다. 주민들이 공동조업을 하는 조합 개념으로 동이 결성되고 그 체제가 유산처럼 유지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동과 리는 각각 부동산과 동산의 자산을 갖고 있다. 12월 현재 구좌읍 하도리는 1005가구지만 행정호수, 즉 선거권자는 368가구다. 이번 이장 선거에 336명이 투표해 투표율은 91.3%였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 구좌읍 투표율은 66.5%, 2020년 21대 총선 투표율은 60.3%였다. 딱 이만큼 이장 선거가 뜨겁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