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시작되면서 부다페스트의 밤이 길어졌다. 한창 활동하기 좋은 시간에 별안간 밤이 찾아온다. 먹물을 쏟아버린 듯이 빠른 속도로 까매지는 하늘에 아직도 적응하는 중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부다페스트의 겨울밤인 걸까. 세상에서 가장 밤이 아름다운 도시답다. 애초에 밤이 길다는 걸 장점으로 만들기 위해 공들여 야경을 꾸민 것 같다. 아름다운 야경을 눈에 담기 위해 요즘 밤마다 바깥으로 나간다. 야경과 더불어 하늘을 장악해버린 까마귀 떼도 만날 수 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족히 1억 마리는 돼 보이는 까마귀 떼가 까만 하늘을 더욱 까맣게 만든다.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드라큘라가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둠이지만 무섭지 않다. 아름답다. 만약 부다페스트에 머물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늘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만 하는 나에게 필요한 눈요기다. 가슴과 머리에 아름다운 걸 담아두지 않은 상태로는 아름다운 시를 써낼 수 없다. 편안하게 책상 앞에만 앉아서 써낸 시를 발표하는 건 독자들에게 실례라고 생각한다. 내 시를 선택해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불편하고 번거로운 길을 택하곤 한다. 이 길 끝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기다리고 있다.
만약 독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부다페스트에 올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도전 앞에서 필요한 용기를 독자들이 준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넓은 세상을 보며 느낀 것을 고스란히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최근 시창작 수업 제안이 들어와서 내가 학생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해본 적 있다. 난 그저 학생들에게 오랜 시간 자연을 바라보게끔 하고 싶다. 자연을 바라보는 일은 그냥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그 고요한 시간을 통해 내면의 속삭임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이 속삭임은 시의 씨앗이 된다. 내가 친구 하나 없는 부다페스트에 온 이유도 바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연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