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대학을 다닐 때 잠깐 수어(수화) 동아리에서 활동했었다. 그때 선배들은 장애인을 ‘장애우’라 부르라 했다. 장애 있는 사람이 아닌 친근한 벗으로 생각하라는 뜻이다. 언어는 시대 변화에 따라 쓰임이 달라진다. 장애우는 2000년대 들어 비주체적이고 의존적인 느낌을 준다며 부적절 용어로 취급됐고 ‘장애인’이 제자리로 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13일 선거대책위원회 장애인본부 출정식에서 ‘장애우’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비장애인을 ‘정상인’이라 지칭한 적도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후보가 장애인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망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처지는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도 과거 SNS에 ‘장애우’라 썼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당 대표 시절인 2017년 전국장애인위원회 출범식 축사에서 두 차례 장애우라 말했다.
친밀한 뜻 때문인지 장애우 표현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검색해보면 장애인 지원단체 중 ‘장애우’가 포함된 명칭이 부지기수다. 지난 4월 국회의원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장애차별구제청구 공익소송을 제기한 단체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였다.
장애우가 맞냐 틀리냐보다 무심코 쓰는 언어에 장애인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공감이 더 중요하다. 요즘은 앉은뱅이, 소경이란 말은 당연히 못 쓴다. 그런데 장애인 단체들은 ‘꿀 먹은 벙어리’‘벙어리 장갑’ ‘눈먼 돈’ ‘장님 코끼리 만지기’ ‘깜깜이 방역’이 모두 부적절한 표현이라 한다. 장애인 비하 용어 피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설가 장강명씨는 지난해 ‘깜깜이라는 말은 혐오 표현인가’ 제목의 언론사 칼럼에서 “(장애인에게)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모두 금지하자는 게 가능한가”라며 일종의 전체주의 선동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글에 호응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인식차는 크다. 이번 장애우 논란이 양측의 이해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