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깨어있고 준비된 삶

입력 2021-12-15 03:03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 끝 날이 언제이며 그 징조가 무엇일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확하게도 그날과 그때는 알 수 없다고 하셨다. 마치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주님의 재림 또한 그러할 것이다. 생각하지 못한 날, 기대하지 않은 때 주님은 오실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 오실 날을 예측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아니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항상 깨어 있어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도둑이 언제 침입할지 알 수 있다면, 그때만 잘 대비하고 있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도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는 것 외에는 도둑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이른바 시한부 종말론은 역사 속에서 교회에 많은 해악을 끼쳐 왔다. 세상에 무언가 난리와 소문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왜곡된 종말론이 기승을 부려 성도들을 미혹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가정을 버리고, 학교와 직장을 내팽개치고 산속으로, 집단 거주지로 들어가 종말을 기다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 말씀을 빌려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일상을 저버리는 삶을 깨어 있는 삶으로 이해하면서 말이다. 종말의 때를 추측해 시간표를 그리는 것을 준비된 삶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따라 깨어 있음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 기다리는 삶은 일상을 등지는 삶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세상 끝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면서 밭에 있던 두 사람 이야기를 하신다. 그날에 한 사람은 데려감을, 한 사람을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두 여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두 여자가 똑같이 맷돌질하고 있었지만, 주님이 임하시는 날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게 된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쉽게 놓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이나,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 모두 동일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좋은 결말을 맞이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 모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좋은 결말을 맞이할 사람이라고 해서 독특하고 특별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일상을 살아가다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깨어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예수님은 다시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신다. 주인은 종에게 그 집의 다른 하인들을 맡겨 두고 떠난다. 이 종들은 주인의 부재와 상관없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직무를 감당해야 했다. 충성 되고 지혜 있는 종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악한 종은 주인이 한참이나 늦게 올 것으로 생각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주인이 다시 돌아왔을 때, 각각의 종들에게 어떻게 갚을 것인지는 자명하다.

교회와 성도는 사명을 받은 예수님의 종들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 준비하는 삶이란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는 삶이다. 특별히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잘 돌보는 삶이다. 대단하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시키신 교회의 사명을 조용하고 겸손하게 감당하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어 주님을 기다리는 삶의 태도다.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한 왕이 세 가지 질문을 한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한 현자가 이렇게 답한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며,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며, 그 사람을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어진 일상에서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깨어 있는 삶이다. 난리와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길 주님은 기대하신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