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2대 왕 정조가 한 궁녀를 사랑하는 로맨티스트로 돌아온 ‘옷소매 붉은 끝동’이 MBC 드라마로 3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이 드라마의 매력 포인트는 뭘까.
지난달 12일부터 방영된 ‘옷소매 붉은 끝동’은 시청률 5.7%로 시작했다. 지난 10일 9회에선 시청률이 10.9%까지 치솟으며 회차가 거듭할수록 화제를 불러왔다. 10회차가 방영된 지난 11일도 전국·수도권 시청률 10.2%, 최고 시청률 12.2%를 기록했다. MBC 드라마가 주말드라마를 제외하고 10%대 시청률을 기록한 건 ‘나쁜 형사’ 이후 3년 만이다.
정조(이산)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는 많았다. 2007년 방영된 MBC 드라마 ‘이산’에서도 정조와 후궁인 의빈 성씨(성덕임)의 로맨스를 다뤘다. 의빈 성씨는 정조의 승은을 입은 유일한 후궁으로 문효세자와 옹주를 낳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매력은 기존에 다뤄진 소재를 참신하게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특히 임금이 아닌 궁녀 성덕임의 관점으로 극을 전개한다. 그동안 사극에서 조명되지 못한 궁녀의 생활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성덕임과 이산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임금보다는 궁녀 성덕임에 초점을 맞춘다. 성덕임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왕의 총애를 받는 여자로 묘사되지 않는다. 비록 궁에 얽매인 몸이지만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표현된다.
후궁이 되라는 제조상궁 조씨의 말에 성덕임은 “저는 후궁이 될 마음이 없다. 앞으로도 이렇게 궁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산에게도 덕임은 “궁녀에게도 스스로의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다”고 소신 있게 말한다. 실제 의빈 성씨도 정조의 승은을 두 차례 거절한 뒤 후궁이 됐다.
성덕임뿐만 아니라 평생 궁궐에서 살아야 하는 궁녀들의 처지와 내적 갈등도 세밀히 묘사했다. 제조상궁 조씨는 생각시(어린 궁녀)들이 궁에서 15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인으로 인정받는 ‘계례식’이 다가오자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영영 궐에 갇힌다는 게 슬프다”고 토로한다. 그는 궁녀의 운명이 임금의 한 마디에 의해 부당하게 결정되는 것에도 저항한다.
최근 일부 사극이 역사 왜곡 논란에 시달리거나 고증이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은 것과 달리 이 작품이 고증을 충실히 따랐다는 점도 호평받고 있다. 궁 안 여자들의 머리장식인 첩지의 모양도 사실과 흡사하고 ‘마마’ ‘자가’ ‘마노라’ 등 호칭법도 정확히 따랐다. 시력이 좋지 않은 영조가 안경을 쓰고 책을 읽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동안 정조와 대립하는 인물로 묘사된 정순왕후도 ‘옷소매 붉은 끝동’에선 정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중립적인 노선을 지키는 인물로 나온다. 이 역시 역사적 기록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다양한 색채감과 영상미도 볼거리를 더한다. 이 드라마의 한지선 미술감독은 ‘왕이 된 남자’ ‘왕은 사랑한다’에서도 아름다운 영상미를 구현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