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그 나락에서, 강원 기적의 비상

입력 2021-12-13 04:06
강원 FC 한국영이 12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 하나원큐 K리그1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전반에 팀의 1부 K리그1 잔류를 결정하는 골을 넣은 뒤 환호하며 벤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강원은 후반 추가시간 황문기의 추가골을 더해 1·2차전 종합점수 4대 2로 1부 잔류에 성공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최용수! 최용수!”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가 길게 울리고, 약 4000명 관중의 환호가 강릉종합운동장에 메아리쳤다. 선수를 하나씩 끌어안은 최용수(48) 감독이 본부석 쪽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추어올렸다. 선수 시절 팬들을 열광케 했던 세리머니다. 오렌지색 깃발을 든 관중들이 아리랑 응원가에 맞춰 덩실대며 춤을 췄다.

‘독수리’ 최용수 감독이 중도 부임한 강원 FC를 강등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해냈다. 1차전 패배를 딛고 승부를 뒤집은 건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PO)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강원은 12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 하나원큐 K리그 승강 PO 원정 2차전에서 2부 K리그2 준우승팀 대전 하나시티즌에 전반 선제골을 내줬으나 5분간 3골을 몰아넣은 끝에 4대 1 역전승했다. 강원은 지난 8일 1차전 0대 1 패배를 합해 종합점수 4대 2로 K리그1 잔류를 확정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강릉종합운동장 분위기는 여느 날과 달랐다. 강원 팬들은 본부석 쪽 응원석을 빽빽하게 메웠다. 대전 팬 약 450명은 대전의 상징색인 보라색과 청록색 깃발을 든 채 원정 버스 11대에 나눠타고 장장 4시간 거리를 건너왔다. 킥오프 직전 각자 팬들을 향해 인사하는 선수들에겐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강원은 1차전 패배를 극복해야 하는 처지였다. 최 감독은 경기 전부터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 했다. 그는 “어차피 치고받고 뺏고 뺏기는 게 축구다. 모 선수가 얘기한 것처럼 ‘압도적인 경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차전 뒤 대전 마사가 ‘2차전도 압도적으로 이기겠다’고 한 것을 의식한 언급이었다.

강원은 시작부터 경기를 주도했다. 1차전에 비해 공수 간격을 좁히며 상대가 미드필드에서 공을 쉽게 전개하지 못하게 했다. 최 감독은 테크니컬에어리어 맨 앞까지 나와 연신 손짓으로 간격을 줄이라고 지시했다. 1차전에서 대전 중원 핵심인 마사와 이현식에게 공략당했던 걸 의식한 듯했다.

그러나 첫 득점은 대전이 먼저 터뜨렸다. 대전은 전반 16분 골문에서 30m가량 떨어진 먼 거리에서 측면 수비수 이종현이 다른 선수에 압박이 몰린 틈을 타서 무회전 중거리 슛을 오른쪽 상단 골망에 꽂아 넣었다. 올림픽대표팀 출신 이광연 골키퍼가 몸을 날리며 손을 뻗었지만 어쩔 수 없는 골이었다.

3골 이상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강원 공격은 오히려 이 시점부터 불이 붙기 시작했다. 약 10분 뒤 공격진 에이스 김대원이 왼쪽 측면에서 쇄도하며 동료와 공을 주고받아 단독 돌파를 성공시켰다. 김대원이 문전으로 돌진하는 동료에게 깔아 보낸 공이 대전 수비 이지솔의 발에 맞고 꺾이며 대전 골망에 들어갔다.

불과 1분 뒤 강원은 추가골을 넣었다. 김대원이 코너킥 기회에서 오른발로 감아 보낸 공을 주장 임채민이 반대편 골문 쪽에서 달려들며 머리로 찍어 내렸다. 바닥에 한 번 튀긴 공은 대전 김동준 골키퍼가 손 쓸 틈도 없이 들어갔다. 선제골을 내줄 때만 해도 가라앉던 경기장 분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열기에 정점을 찍은 건 강원 베테랑 한국영이었다. 한국영은 임채민의 골 3분 뒤 상대 골문 왼쪽 측면에서 넘어온 공을 잡아 정면에서 상대 수비 3명의 태클과 몸싸움을 버텨내며 침착하게 오른발로 대전 골망에 감아 찼다. 강원이 1차전 열세를 5분 만에 뒤집는 순간이었다. 한국영은 주먹을 추어올리며 벤치로 달려와 최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얼싸안았다.

강원 최용수 감독이 경기 종료 뒤 선수들을 끌어안고 축하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전은 후반 거구의 브라질 공격수 바이오를 투입하며 반격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강원은 수비와 미드필드가 페널티박스 앞 블럭을 형성해 대전 공격을 틀어막았다. 최 감독 장기인 실리 축구의 장점이 발휘되는 모습이었다. 강원은 추가시간 최 감독이 교체 투입한 황문기가 구석을 노린 오른발 슛으로 추가골까지 넣으며 경기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최 감독은 2018년에도 FC 서울에 중도 부임해 승강 PO에서 이긴 적이 있다. 그는 경기 뒤 “두어 번 이런 경기를 치러보니 이 직업 자체가 정말 쉽지 않다. 피를 말린다”고 했다. 그는 “오로지 생존게임에서 잔류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내년에는 파이널A(상위스플릿) 진출이 목표다. 성공한다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까지 노리고 싶다. 목표를 크게 가져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릉=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