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 오류 논란으로 수험생 6000여명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온전하게 받지 못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전체 수험생 중 비중은 크지 않지만 수능 성적이 수험생들의 상대적 위치를 측정해 산출되고, 대입 결과도 수험생 간의 합격, 불합격과 추가 합격 문제로 맞물려 있어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합격자를 발표하는 수시모집은 물론 오는 30일 시작하는 정시모집까지 대입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9일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결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2점)의 정답 결정을 미뤄야 한다는 결정이다. 이에 따라 해당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처분은 본안 사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다.
재판부는 “정답결정 처분 효력이 유지될 경우 신청인들은 그에 따라 생명과학Ⅱ 과목 등급이 결정된 성적표를 받게 되고, 이를 기준으로 대입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며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손해로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번 결정으로 해당 과목 성적 통보가 지연되고, 대입 전형 일정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재판부도 공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효력정지 기간의 종기를 본안사건의 1심 판결 선고 시까지로 하고 본안사건을 신속히 심리하면 대입 전형일정에 대한 지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이러한 경우까지 대입 전형 일정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신청인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다. 당초 수험생들은 정답 결정의 효력 정지 기간을 본안소송 판결 확정 시까지로 신청했지만 재판부가 이를 1심 판결 선고 시까지 앞당긴 것이다.
생명과학Ⅱ 20번은 두 집단 중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보기’의 진위를 가리는 문항이다. 수험생들은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중대한 오류가 발생해 제시된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문항 자체가 오류라며 이의신청을 했다. 하지만 평가원은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치 않더라도 학업 성취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문항으로 타당성은 유지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항에 결함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정답을 찾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취지다.
법원 결정의 파장은 상당할 전망이다. 교육부는 “10일 예정됐던 성적 통지는 예정대로 이뤄진다. 다만 생명과학Ⅱ 응시자 6515명의 생명과학Ⅱ 성적 통지는 보류된다”고 말했다. 생명과학Ⅱ 응시자 성적표에서 생명과학Ⅱ 성적은 공란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수험생은 예정대로 성적표를 받는다. 생명과학Ⅱ 과목은 과학탐구Ⅱ 과목 중 응시자가 가장 많고 의대 지망생을 비롯한 최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이다. 성적이 확정되지 않으면 수시 최저학력기준을 산출하기 어려워지고, 정시에서는 대학별로 변환표준점수가 생성되기 어렵다. 평가원이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 요구대로 해당 문항을 전원 정답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면 생명과학Ⅱ 평균점수가 올라가 표준점수 최고점이 1~2점 떨어지는 등 다른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교육부는 “평가원, 대학들과 신속히 협의해 빠른 시간 내에 향후 대입일정 등 필요한 사안을 안내하겠다. 후속 대입전형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