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끝나지 않은 마녀사냥

입력 2021-12-11 04:08

이른바 ‘개똥녀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2005년 6월 서울의 지하철에서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한 여성의 사진이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며 일어난 소동이다. 관련 언론 보도는 쏟아졌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도 확대 재생산됐다. 소동의 반향은 상당히 커서 논문으로도 발표됐을 정도였다. 한 논문은 인터넷 마녀사냥의 문제와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을 비교하며 그 의미를 다뤘다.

논문은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과 인터넷 마녀사냥의 전개 과정이 흡사하다면서 개인에 대한 집단의 비이성적 폭력, 객관적 근거 없는 판단, 다수의 지지, 현존 사회질서 유지 등을 공통점으로 분석했다. 차이점은 중세 마녀사냥이 고문과 처형이라는 물리적 폭력과 국가에 의한 처벌이었다면 인터넷 마녀사냥은 (개인 신상공개 등의) 정신적 폭력과 익명의 대중에 의한 처벌이었다. 논문 결론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향후 언제든 다시 출현할 수 있으며 그 영향력 또한 적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론은 예언이 됐고 이제 우리 모두 경험하는 것처럼 각종 신상털기와 낙인찍기, 인격살인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근래엔 SNS와 유튜브 등의 매체가 가세하면서 이 거대한 광기를 누그러뜨리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오미크론 첫 확진자로 알려진 인천 A교회 목사 부부와 가족에 대한 과도한 비판, 그리고 조동연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에 대한 무차별 폭로 등도 마찬가지다.

중세 마녀사냥은 1450~1750년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소위 ‘마녀술’을 부린다는 혐의로 고발돼 재판과 고문을 거쳐 처형됐던 사건이다. 희생자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적어도 6만명에서 10만여명이 사망했다고 추산될 뿐이다. 학자들은 당시 마녀사냥이 종교가 지배했던 사회 속에서 나온 혐오나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가 그 원인이었을 거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로마 가톨릭이 우세했던 유럽 사회는 악마적 마법의 존재와 밀교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종교 재판소는 종교적 정화의 이름으로 마녀재판을 주관했다.

마녀사냥의 이면엔 시대적 상황도 반영됐다. 이교도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분열됐던 사회, 이어진 종교전쟁과 30년전쟁, 경제의 악화, 기근과 페스트 등 전염병이 당대 사회를 휩쓸었던 시기에 마녀사냥은 절정에 달했다. 사람들은 연속된 불행에 대한 이유를 찾아다녔고, 그 원인을 마법사와 마녀의 불순한 행동에서 찾았다. 희생양으로 지목된 사람들에겐 자백을 강요했고, 자백을 거부한 자에겐 공포를 자극하는 심문과 가혹한 고문이 가해졌다.

마녀사냥은 르네상스 이후 합리주의 확산, 증거 재판주의 도입 등으로 그 행위가 비이성적이라고 인식되면서 대중과 멀어졌고 점차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로마 가톨릭교회도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희년 기념 미사에서 십자군 원정, 마녀사냥, 종교재판, 유대인 대학살 때 침묵 등의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더 이상 종교가 지배하지 않는다. 합리주의와 이성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과학 혁명의 시기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중세와 똑같은 패턴으로 인터넷 마녀사냥이 횡행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암흑시대를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구나 그 끔찍한 사냥의 타깃이 기독교인이나 연예인, 여성, 난민 등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역사 속에 사라졌던 마녀사냥이 인터넷 마녀사냥으로 다시 살아난 것은 가해자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500년 전엔 종교였다면 지금은 자유주의교, 나만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 숭배 인본주의교, 조회 수만 높으면 모든 게 용인되는 맘몬 유튜버교가 아닐까. 지금은 누구를 비난하는 대신 서로의 등을 토닥이는 격려가 더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신상목 종교부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