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내 이름이 잠시 잊혔을 때

입력 2021-12-10 04:05

맨 처음 책방을 열었던 동네에 가끔씩 가본다. 제주로 이사하고 나서 내 책방이 있던 공간에는 속옷 가게가 들어섰다가 지금은 다시 책방이 됐다. 이상한 겸연쩍음 때문에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괜스레 겉을 기웃거리며 부디 오래 버텨내기를 응원하곤 한다. 며칠 전에도 애인과 함께 근처를 지나다가 그 앞을 찾아갔다. 책방은 무사했다. 어떤 가게들은 사라졌다. 안도하고 아쉬워하며 우리는 쉴 새 없이 동네 참견을 했다.

그러다 한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그 가게는 단칸짜리 자그마한 가게였다. 밤에 책방을 마치고 출출함을 느낄 때마다 그 가게에 가서 탕안주를 시켜 맥주를 한두 잔 마시곤 했다. 나중엔 사장님이 알아서 메뉴에 없는 공깃밥을 챙겨주기도 했었는데. 지금 그 가게는 바로 맞은편 4층짜리 건물로 확장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붐비는 가게가 되다니, 정말 대단해.” 이미 몇 번 나눈 적 있는 대화를 우리는 또 반복하며 그 건물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다 애인이 문득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저기서 그분하고 같이 술 마신 적도 있었지?” “그분? 그분이 누구야?” “그…. 아, 이름이 생각 안 나는데, 그…. 왜…. 착한 사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착한 사람’이라는 단서만으로는 애인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답답해하는 나에게 애인은 두 번째 단서를 제시했다. “부천 사시는 착한 사람!” 아…! 나는 바로 정답을 맞혔다. 감정사회학자 K로구나. “맞아, 맞아!” 애인은 속이 후련하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 모든 설명 가능한 인상을 넘어 ‘착하다’는 것으로 누군가의 기억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그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간단하게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내 이름이 잠시 잊혔을 때, 과연 나는 어떤 말로 설명될까라는 생각을 해보자마자 무섭고 울적해져서 그만두었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