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까지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큰아이는 착한 아이로 소문이 났다. 학교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집안 일을 도우며 나무랄 데 없이 자랐다. 그랬던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갑자기 돌변했다. 어느 토요일 붉은 초미니 스커트에 크로스백을 메고 짙게 화장을 한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찾아왔다. 기겁을 하고 만류했더니 “내가 나가겠다는데 왜 막아! 네가 무슨 상관이야!”하며 대들었다. ‘너’라는 말에 나는 이성을 잃고 뺨을 때렸다. 그런데 딸은 “그래! 맞을 만하네! 때려! 더 때려!”하며 몸싸움까지 했다. 힘이 달린 나는 딸의 발에 밟혀 발가락이 골절이 되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한 없이 울었다.
그 후, 하교시간에 교문에서 딸을 기다리며 감시했다. 딸은 잽싸게 먼 길로 돌아 다녔고, 가방 속에는 이름 모를 화장품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말만 하면 싸울 듯 대들어 집안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언젠가 미친 듯이 대들길래 피해 집을 나왔다가 밤늦게 들어갔더니 딸은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 후 며칠은 조용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느 날, “엄마! 우리 반 친구 중에 자살하려고 손목을 그은 아이가 있어.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뛰쳐나가는데 나도 따라가고 싶었어.”라고 했다. 그때부터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그러다 며칠 후 딸의 친구가 ‘친구들에게 이상한 문자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교회 언니께 급하게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학교로 뛰어갔다. 딸은 보건실에 누워 심한 오한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아이를 선생님들이 찾아 문을 부수고 업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옮겼는데 “엄마 내가 오늘 사라졌을 때 기분이 어땠어?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했어?”라며 어이없는 말을 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과연 이 아이가 변할 수 있을까?’ 절대 변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힘들게 중학교를 마치고 아이는 우리 부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딸이 떠나자 집안은 조용하고 평화로웠지만 딸이 집에 오는 주말이 되면 온 집안이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집에 와서도 눈에 걸리는 행동이 지속되자 남편과 살얼음판 같은 갈등이 시작되며 식사조차 편히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소식을 들었다. 안 가겠다고 짜증을 내는 아이의 등을 떠밀어 수련회에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딸이 흥분해서 전화를 했다. “엄마! 내가 친구 때문에 힘들어하고 사소한 일에도 우울해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잖아! 그런데 그런 생각은 내 마음에 내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뭐라고?” 했더니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였어!” 하는데 꼭 꿈만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며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수련회 말씀들을 집중해서 읽었다. 그러다 목사님의 “어느 집안의 아이가 너무 아파요. 그런데 아픈 아이를 위해 기도한 게 아니라 그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더니 아이의 병이 나았어요.” 라는 말씀에 내 마음과 시선이 딱 멈췄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분명 딸인데, 하나님은 내가 문제라고 하시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 중심을 찌르셨다. ‘복음이면 다 된다고 하면서 자식의 문제는 아니라고?’ 하고 물으신 것이다. “하나님! 아이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엄마 말에 따르지 않는다고 분내며 싸웠습니다. 아이 말대로 내 안에 내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서 버리고 내가 주인되어 살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드디어 나도 딸과 같이 주님 앞에 굴복하고 3년 7개월의 긴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몰라보게 달라진 딸은 화나는 일이 있어도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는데, 엄마한테 화내면 안 되잖아!”하며 웃어주었고, 언니의 천지개벽 같은 변화를 보며 동생들도 함께 기뻐했다. 아슬아슬하던 집안 분위기가 웃음꽃이 피었다. 딸의 행동으로 힘들다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 아이가 너희 가정의 축복의 통로’라고 하셨던 응답이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으로 삶에서 모범을 보이며 성실히 근무한다. 교회에서는 찬양팀에서 반주자로 섬기며 공동체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산다. 복음이면 다 된다. 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딸을 통해 내가 주인된 삶에서 돌이키고 우리 가정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김복순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