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하는 ‘이성윤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을 계기로 공소장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기소 후 공소장 공개 여부를 두고 법무부 장관과 일선 검사들 간 설전도 벌어졌다.
공소장 유출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수원지검 수사팀은 압수수색의 위법성과 별개로 기소 후 공소사실이 알려진 것은 공무상 비밀누설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지난 3일 공수처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공수처 압수수색 영장상에는 1심 공판 전까지 공소장이 공무상 비밀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학자나 법조인의 견해는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수사팀이 아닌 다른 검사들도 공소제기 후 공소장은 비밀이 아니라는 취지의 글을 검찰 내부망에 잇따라 올렸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해 지난 5월 진상조사를 지시했던 박범계 장관은 첫 재판 이전 공소장 공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는 8일 출근길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오자 “수사팀도 아닌 이들이 이야기하는 건 당치 않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수사팀은 기소 후 공소장은 ‘비밀’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 공소장이 비밀로 분류돼 보안이 필요하거나(요비닉성), 내용 자체가 비밀로 지켜져야 할 가치(실질비성)가 결여됐다는 것이다. 관련 판례를 들어 공무상비밀누설죄는 기밀 그 자체가 아닌 비밀 누설에 의해 위협받는 국가 기능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도 했다.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 적용 시점이 ‘공판 청구 전’으로 한정된 것도 기소 후 공소사실 공표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반면 박 장관은 “첫 재판 전에 공소장이 공개되는 것은 일방적”이라며 “법정 이후 시점에 양측(피고인과 검사)이 대등한 당사자로 자기주장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죄가 된다, 안 된다를 떠나 원칙의 문제”라고 했다. 재판 시작 전 공소장 공개가 공무상비밀누설죄인지 여부를 떠나,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한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이에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원칙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박 장관은 왜 국회의원 시절 법무부에 요구해 재판 전 공소장을 받았는지 묻고 싶다”며 “국정농단 특검법에 수사 중 수사 내용 무제한 공개가 가능하도록 하는 특별 조항을 넣은 건 다름 아닌 박 장관”이라고 날을 세웠다.
학자들은 공인에 대한 공소사실 공표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소 후 공소장을 비밀로 규정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돼야 한다”며 “재판에 넘겨진 공인에 대한 공소사실이 노출된 게 중대한 잘못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형사법 전문 교수도 “국회 제출 등 공식적 절차를 통한 공인의 공소장 공개까지 막는 건 국민의 알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기소 당일 공소장 공개가 원칙인 반면 독일은 재판 이전에 공소 사실을 공표할 수 없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