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행복은 어디에” 日 젊은 거장의 영화 ‘해피 아워’

입력 2021-12-09 04:02
영화 ‘해피 아워’에서 친구인 아카리, 후미, 준, 사쿠라코(왼쪽부터)가 아리마온천에 놀러가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 이들은 절친이지만 서로 모르는 각자의 고민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제공

“이제는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 진정한 삶의 한 토막이 이제야 보이는 것 같거든. 남들이 뭐라고 할지 몰라도 원하는 걸 원한다고 말하기로 했어.”

불행한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준(가와무라 리라)이 말했다. 아카리(다나카 사치에) 사쿠라코(기쿠치 하즈키) 후미(미하라 마이코) 그리고 준은 마흔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앞날이 뿌옇게만 느껴진다. 일도 사랑도 뜻대로 되지 않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조차 정확히 모른 채 하루하루가 굴러간다.

일본의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43) 감독의 영화 ‘해피 아워’가 9일 개봉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자신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이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한국 팬들을 만났다.

‘해피 아워’는 각자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헤맨다는 작품의 주제를 자연스러운 연기와 에피소드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세 친구는 어느날 후미가 일하는 아트센터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여한다. 프로그램 제목은 ‘중심이란 무엇인가’. 참가자들은 짝을 지어 등을 맞댄 채 넘어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일어나기, 상대방의 단전에 귀를 대고 소리 들어보기, 이마를 맞대고 상대방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 등의 활동을 한다.

강사 우카이는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내 몸 크기를 작게 잡으면 오히려 설 수 없게 된다. 나는 이 정도 크기라고 확실하게 전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한다는 것, 누군가 내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에 대해 각자 생각하고 의견을 나눈다. 뒤풀이 자리에서 준은 1년 가까이 이혼 협의를 하고 있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주인공들의 상황은 서서히 변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네 친구.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제공

네 명의 주인공은 감독이 고베 지역에서 즉흥 연기 워크숍을 통해 캐스팅한 비전문 배우다. 이들은 극 중에서 절친한 친구 사이지만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과 불안을 가진 채 살아간다. 여러 가지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내면의 불안감이 서서히 표출된다. 이들의 관계가 갈등을 빚기도 하고 각자 마음에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조용히 흔드는 감독의 연출이 인상적이다.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는 순간마다 배우들은 관객과 정면으로 눈을 맞춘다. 배우들의 눈빛과 움직임, 교외버스의 흔들림마저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2015년 공개된 ‘해피 아워’는 하마구치 감독의 첫 장편으로 세계 영화계에 그를 알린 작품이다. 주연 배우 네 명이 제68회 로카르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제37회 낭뜨3대륙영화제 관객상과 우수작품상, 제10회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각본상, 제26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아시아 장편 감독상 등을 받았다.

러닝타임이 5시간 18분에 달하지만 끊임없는 사건과 갈등의 전개 덕분에 지루하지 않다. 2016년 첫 리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미국의 영화리뷰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100%’라는 높은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