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어제 “첫 재판 이전 공소장 공개는 안 된다. (공소장 공개가) 죄가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원칙의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수사에 반발하는 기류가 확산되자, 이를 비판하기 위한 발언이다.
박 장관의 발언은 억지에 가깝다. 공소장 공개 문제가 법이 아닌 원칙에 관한 것이라면 굳이 공수처가 수사할 이유가 없다. 범죄 혐의가 있어야 수사에 착수하는 것 아닌가. 이 고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를 중단하도록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공수처는 이 고검장을 기소한 수원지검 수사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법조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공소 제기 후 공소장 공개는 현행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다수다. 피의사실공표죄도 ‘공소 제기 전’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게다가 대검 감찰부는 지난 5월 박 장관 지시로 공소장 유출 진상 조사를 벌였지만,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수사팀이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공소 제기 후의 공소 사실이 비밀인지 아닌지를 밝혀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김 총장은 “입장을 밝히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외면했고, 박 장관은 갑자기 공소장 공개 금지 얘기를 꺼냈다.
문재인정부 사람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유달리 피의사실 공표와 공소장 공개에 부정적이다. 법무부가 수사 정보를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한 규정을 만든 것은 조국 사태 이후다. 추미애 전 장관은 지난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거부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박 장관은 2016년 국정농단 특검법을 만들 때 ‘특검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수사과정에 대해 언론브리핑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박 장관은 5년 전과 왜 이리 다른가.
[사설] 박 법무의 재판 전 공소장 공개 금지 주장 억지스럽다
입력 2021-12-09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