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밥상+머리] 어둑해진 저녁, 환해지는 저녁밥상

입력 2021-12-11 04:03

어느새 어둑해졌다. 12월의 일몰시간은 오후 다섯 시 십여 분쯤이니, 서둘러 해가 저문다. 미처 집에 돌아가기 전에 어둑해진 사방을 돌아보며 나직하게 소리 내어 말해본다. 어둑해졌네. 어둑어둑. 둔탁하고 무거운 발음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 나는 터벅터벅 발소리와도 닮았다.

어둑해지는 건 저 멀리 산 너머나 높은 하늘에서 시작해 어느새 사람의 가슴 밑바닥까지 도달하며 번지는 것이니, 종교를 갖지 않은 자도 어둑해질 때는 잠시 엄숙하고 경건해진다. 또 그만큼 두렵고 무서워진다. 옛 사람들이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 있는 것처럼 느껴 지레 겁을 먹으며 어둑서니를 만들어낸 것도 아주 깜깜한 밤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을 똑똑히 알아볼 수 없을 딱 그 정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둑해졌다는 것은 막 어둑해지기 시작할 때가 아니라 어둑해진 것이 최소한 이삼십 퍼센트는 진행된 후에야 깨닫는 게 일반적이어서 이제 그 어둑해지는 일은 말 달리듯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곧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다.

당신은 그 짧은 시간을 찬찬히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가? 누군가 “어둑해졌네”라고 말할 때 그는 하늘의 색을 살피는 것이다. 시간의 명도를 음미하는 것이다. 잠시 멈춰 서서 내 밖의 자연과 생명들에게 시선을 주는 것이다. 동시에 시간의 내면을 타고 자신의 내면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둑해지는 시간을 사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둑어둑한 시간, 다독다독 세상의 약한 것들과 나 자신을 어루만지는 경험. ‘어둑해지다’라는 과정의 언어, 농도의 언어를 사랑한다.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짓는다. 이런 날은 특별히 맛있는 저녁을 먹어 ‘주어야’ 한다. 흔히 배달음식을 시킬 확률이 높지만, 따끈하게 새로 지은 밥이 주는 위로를 대체할 배달음식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대신 크게 힘들지 않으면서도 맛있게 지을 수 있는 토마토밥은 어떤가?

적당한 크기의 완숙 토마토를 골라 아랫부분에 십자로 칼집을 낸다. 양파와 마늘은 채썰어 소금, 후추로 간하며 살짝 볶아놓는다. 여분의 토마토가 있다면 하나쯤 다져서 함께 볶아도 좋다. 이제 냄비에 쌀을 넣고 평소보다 아주 조금 적게 물 양을 잡아 뚜껑을 열고 센 불에서 보글보글 끓인다. 밥물이 끓으면 그때 볶은 재료들을 쌀과 고루 섞어놓고, 냄비 중앙에 십자칼집을 위로한 토마토를 어여쁘게 앉힌다. 씨가 있는 푸른 올리브 몇 개를 태양을 사랑하는 별처럼 함께 넣는다. 뚜껑을 닫고 10~15분 정도 밥을 하면 된다.

살짝 뜸을 들인 후 뚜껑을 열면, 밥 위에 잘 익은 토마토가 붉게 흐드러져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올리브오일 몇 방울 두르고 소금 약간 뿌려 토마토를 으깨 비벼 먹는 밥. 특별한 반찬 없이 냉장고에 있는 장아찌 한두 개만 곁들여도 저녁밥상이 환해진다. 이토록 환한 저녁밥상은 혼밥이라도 충분히 따뜻하다. 십이월의 저녁밥상, 김윤아씨의 노래 ‘고잉 홈(Going home)’을 들으며 다시 내일을 노래해도 좋으리라.

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