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사진) 금융위원장이 지난 8월 말 취임한 이후 금융위 내부 의사결정 시간은 이전에 비해 크게 단축됐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서면 보고가 늘어났는데, 고 위원장은 이에 대한 ‘피드백’이 상당히 빠르다고 한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7일 “서면보고 처리 시간이 빨라진 데 비례해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고 위원장은 평소에 자신이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듣는 편에 가까운데, 자신이 한번 결정한 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일사천리 업무 스타일은 ‘가계부채 파이터’를 자임한 고 위원장의 정책 추진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8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고 위원장은 첫 출근 날부터 고강도 정책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급증한 가계부채가 거시경제 및 금융시장 안정을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위원장이 공언한 대로 가계부채 관리 방안이 잇따라 단행되면서 지난 7월 10%대였던 가계대출 증가율은 11월 기준 7.7%로 낮아졌다.
고 위원장은 소신 있다는 평가와 동시에 급작스러운 대출 규제로 부작용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강화된 후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일제히 올렸고, 심지어 서민 전용 대출상품까지 제한됐기 때문이다. 제1금융권보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금리가 낮은 금리 역전현상까지 나타났다. 대출 한파에 내몰린 실수요자들이 금융 당국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진행되는 은행의 가산금리 폭리를 막아달라’는 글까지 등장했다. 집값을 잡으려고 무리하게 관치금융의 칼을 빼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뒤따랐다. 금융권 일각에선 “매파 금통위원 출신인 고 위원장이 집값 버블을 잡을지, 집값 잡으려다 서민만 잡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위원장은 내년에도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가계대출 누르기 기조를 이어가면서 중·저신용자 대출에 대해선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서 제외하는 탄력적인 정책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내년이 문재인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점을 감안하면 고 위원장의 소신 행보는 ‘반년’짜리 일 수 있다. 고 위원장의 대출 옥죄기에 양당 대선 후보들이 부정적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 하반기에는 새로운 금융당국 수장에 새로운 가계부채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경택 김지훈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