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아닌 인형, 어떻게 해야 더 자유로워질까

입력 2021-12-07 04:06
무대 위 인형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인 ‘2021 기존의 인형들’에 참여한 안무가 김보라. 단막극 3편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에서 김보라는 인형을 통해 움직임의 기본 단위와 춤의 역할을 탐구한다. 조음기관 제공

연극 등 공연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는 인형은 사람을 대신해 배우의 역할을 한다. 인형 조종자는 인형의 움직임 목소리 연기 등을 통해 인형을 극 중 캐릭터로 만든다. 대체로 말보다 움직임에 의존하는 인형은 인간 배우가 구현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인형 디자이너이자 연출가인 이지형 조음기관 대표는 인형을 활용해 인간중심에서 벗어난 공연들을 추구해왔다. 2018년 인형 작업자가 마주한 한계에서 출발해 무대 위 인형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를 선보였다. ‘기존의 인형들’이란 타이틀의 공연은 무대 예술가 3명에게 자신이 만든 인형을 건넨 뒤 연출을 맡긴 것이다.

당시 연출가 적극, 연출가 겸 무대 디자이너 애르베 르라흐두, 무대 디자이너 여신동 등 3명에게 전달된 인형은 모두 똑같으며 공연에서 인형 사용 방식에 대한 매뉴얼은 일절 없었다. 3편의 단막극으로 이뤄진 ‘기존의 인형들’은 단순 소품이나 극적 장치로서 인형이 아니라 인형의 본질에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초연 당시 공연 마니아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기존의 인형들’이 올해 또 다른 예술가 3명과 함께 돌아왔다. 9~11일 서울 강남구 M극장에서 열리는 ‘2021 기존의 인형들’에는 안무가 김보라, 무대 디자이너 여신동, 연출가 이경성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제공받은 인형과 함께 ‘관절, 감탄사, 언어’라는 키워드를 갖고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극을 꾸려나갈 예정이다. 공연은 김보라의 ‘원래의 몸’, 여신동의 ‘인터뷰’, 이경성의 ‘고랑 몰라’ 순으로 전개된다.

인형을 통해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몸의 물성을 이야기하는 ‘원래의 몸’은 움직임의 최소 단위인 ‘관절’을 키워드로 몸의 비언어적 전달체인 춤의 역할을 찾아간다. ‘인터뷰’는 소리(감탄사)를 통해 인형의 정체성을 찾는 시도다. ‘말해도 몰라’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인 ‘고랑 몰라’는 언어를 키워드로 말하는 인간 배우와 말이 없는 인형 배우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갖고 제주공항 부지에서 발굴된 4·3항쟁 유해와 유가족을 조명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