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긴급대출 대상입니다” 대출한파에 은행피싱 기승

입력 2021-12-07 04:05

이모(39)씨는 최근 ‘고객님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특례보증 긴급대출 신청대상’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2년 전 아파트에 입주하느라 1억원 넘게 빚을 진 데다 자동차 구매 할부금까지 납부 중인 이씨는 ‘정부 지원 대출’이라는 말에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씨 전화를 받은 담당자 A씨는 자신이 한 시중은행 ○○점 직원이라고 하면서 이씨 직업, 소득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잠시 통화가 중단된 사이 이씨는 이 은행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A씨가 ○○점 직원 맞느냐고 물었고, “그런 사람은 근무하고 있지 않다. 피싱인 것 같다”는 답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이씨는 6일 “잠시 전화가 끊어진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확인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사기를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피해와 관련한 정부의 금융 지원 상품으로 포장하거나 교묘하게 대출 절벽에 내몰린 서민들을 노린 은행 사칭 피싱 범죄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피싱 범죄는 시중은행 광고 메시지 형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데다 ‘정부 특례보증 긴급대출 신청 대상이지만 아직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접수자가 많으니, 빠른 신청 바란다’ 등의 ‘미끼성’ 메시지로 금융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실제 판매 중인 상품명을 쓰거나 연 1.2~2.4% 등 초저금리 가짜 상품을 안내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은행사칭 의심 대출 스팸문자 신고는 지난해 상반기 7만6863건에서 같은 해 하반기 20만9137건으로 급증했다. 2021년 상반기만도 46만2462건이나 됐다. 피해 금액 역시 급증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금액은 2018년 4040억원, 2019년 6398억원, 2020년 7000억원으로 급증세다. 피싱 사기는 은행 직원뿐 아니라 금융 당국 관계자 등을 사칭할 뿐 아니라 최근엔 얼굴과 목소리까지 모방하는 딥페이크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날로 진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싱 메시지 등에 안내된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지 말고 금융기관 대표번호로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싱 메시지에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 등을 누를 경우 개인 정보를 가로채는 애플리케이션이 깔릴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3일 피싱 사이트를 걸러내는 차단시스템을 구축하고, 해킹에 이용된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의 ‘전기통신 금융사기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급증하는 피싱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박소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피싱 예방 전화기 구입비를 지원하고, 범죄 대상 가능성이 높은 대상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위험을 알리며, 관련 교육을 강화한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