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의혹의 중심에 선 손준성(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대구고검 검사에게 청구된 두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총체적 위기에 봉착했다. 마지막 승부수에도 출범 후 11개월간 ‘구속·기소 건수 제로(0)’라는 성적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공수처는 ‘판사 사찰 문건’ 의혹과 관련해 손 검사를 소환해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만 수사 전망이 밝지는 않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출범한 공수처가 지금껏 마무리한 사건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 교사 특별채용 의혹’ 1건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공수처에 기소권이 없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최근 조 교육감의 비서실장을 불러 조사하는 등 사실상 보완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간 구속된 피의자는 없다. 고발 사주 의혹에선 이례적으로 차장검사가 수사팀 주임검사로 투입되는 등 전력을 투입하다시피 했음에도 손 검사의 신병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옵티머스 사건 부실 수사 의혹,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허위 면담보고서 작성 의혹 등에서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수사 성과와 별개로 정치적 중립성·공정성 시비도 공수처가 풀어야 할 숙제다. 입건한 사건 23건 중 4건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국민의힘에선 윤 후보의 범죄 혐의가 불분명함에도 입건을 서둘렀다며 ‘윤석열 수사처’ ‘민주당 청부수사처’라고 비판한다. 손 검사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공수처 여운국 차장검사는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서 최종 지휘권자였음을 강조했다. 또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여 차장이 손 검사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공수처는 아마추어”라며 수사능력 부재를 자인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스스로 수사기관으로서의 권위를 떨어트리지 않아야 한다”며 “반쪽짜리 수사로 얼렁뚱땅 사건을 무마시킨다면 문을 닫는 게 낫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공익인권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최소한의 공직 수행에 대한 책임감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으로 이첩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질타했다.
공수처는 판사 사찰 문건 의혹 수사로 돌파구를 찾는 모양새다.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다음 날 소환을 통보했으나 손 검사은 출석 연기 요청으로 응수했다. 공수처는 앞서 행정법원이 “문건 작성 과정이 위법했다”고 판결한 점을 근거로 직권남용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검찰에서 이미 무혐의 결론이 나온 바 있어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