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수를 ‘평화’라고 말하는 목회자가 있다. 김종익(60) 세상의소금염산교회 목사가 ‘평화 목회’의 주인공이다. 1948년 창립한 교회는 오랫동안 서울 마포구 염리동 산동네 한복판에서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최근엔 교회 주변의 낡은 주택이 모두 재개발되면서 아파트 숲에 둘러싸이는 상전벽해를 경험했다.
지역의 변화와 발맞춰 교회도 새롭게 단장했다. 1988년 건축한 본당은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쳤다. 본당 옆 661㎡(200평) 면적 부지에 총면적 3966㎡(1200평)의 솔틴비전센터를 세웠다. 솔틴은 소금을 뜻하는 영어 ‘솔트(Salt)’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인(人)’을 합쳐 만든 조어다.
지하 1층, 지상 5층 높이의 센터는 주민을 위한 복합 문화센터와도 같다. 도서관을 비롯해 카페와 갤러리 악기연습실 정원 등 편의시설을 갖췄다. 이곳을 교회로 알고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주민을 위해 그만큼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다.
센터 2층의 평화나루도서관이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도서관은 ‘평화’를 노래하는 공간이다. 서고에도 평화를 공부할 수 있는 장서 2000여권을 채웠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세대가 읽을 수 있도록 동화부터 소설 전기 학술 인문학서 잡지 등을 다양하게 비치했다. 어린이를 위한 놀이 공간도 만들었다. 도서관 옆에는 평화를 주제로 한 전시 공간도 있다. 현재는 분단과 생태, 아프가니스탄, 집단학살에 대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전시실 옆 소극장에서는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 과정과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 온통 평화를 노래하는 공간이다.
김 목사는 지난달 25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놓으셨다”며 “그래서 평화를 복음의 진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주민과 함께 평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평화 도서관을 만들고 개방했다”고 설명했다.
장로회신학대와 같은 학교 신학대학원·대학원에서 선교학을 공부한 김 목사는 경기도 안산제일교회에서 13년간 부목사로 사역한 뒤 2002년 세상의소금염산교회에 부임했다. 평화가 복음의 진수라는 소신은 담임 목회를 하면서 더욱 구체화했다.
교회 안에서 평화라는 개념은 묘한 이중성을 지닌다. 예수님의 평화로도 받아들여지지만 분단 이데올로기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되기도 해서다. 평화보다 화평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목사는 “교인 간 평화, 주민과의 평화, 갈등을 해소하는 평화, 남과 북의 평화 등으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평화의 가치들이 분단 체제 속에서 오히려 갈등을 빚는 단어로 오해될 때가 있다”며 “그래서인지 우리 교인들도 처음에는 평화 담론을 낯설게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교인은 물론이고 당회원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을지 궁금해졌다. 의외로 김 목사는 “설득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설득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고 대신 여러 가치의 공존에 의미를 뒀다. 이게 바로 에큐메니컬 정신”이라며 “여러 색이 공존하는 과정에 신뢰가 생겼고 결국 교회 안에도 평화가 깃들고 평화 사역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김 목사는 지속해서 평화를 이야기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의견도 존중하며 조화의 길을 찾은 셈이었다.
교회에는 한동안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주제도 걸려 있었다. 코로나19 직전 4·16 합창단을 초청해 콘서트도 열었다. 모두 평화 사역의 하나로 진행한 일이었고 교인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20년 평화 사역의 결실이었다.
김 목사는 “모두와의 평화가 불편하다고 해서 말을 안 하면 이데올로기 안에 묶이게 된다. 용기 내 말하면 복음의 진수를 전할 수 있다”면서 “씨를 뿌리면 넷 중 하나는 나올 거라 믿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계속 뿌렸다”고 밝혔다.
교회는 코로나19 중에도 센터 건축과 본당 리노베이션을 마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기본적인 사역은 다음세대를 대상으로 하던 교회 프로그램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것이다. 이 교회는 오래전부터 교회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평화 기행’과 ‘다크 투어’를 진행해 왔다. 다크 투어는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를 돌아보며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는 여행을 말한다.
김 목사는 “초등학생은 제주 4·3사건 다크 투어를 했고 중학생은 일본 나가사키의 원폭박물관과 평화자료관, 기독교 순교 유적 순례, 고등학생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독립운동 현장을 찾아 역사 기행을 했는데 이를 지역의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다”며 “교회가 지향하는 평화의 가치를 지역사회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의 궁극적인 바람은 교회가 이름값을 하는 데 있다. 그는 “동네에서 소금이 됐으면 좋겠다”며 “메뉴판에 소금을 적어 놓는 식당은 없다. 다시 말해 소금과 같은 교회는 지역사회의 주역이 아니라 숨어있지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