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기러기

입력 2021-12-02 20:21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아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메리 올리버 시선집 '기러기' 중

2019년 83세로 세상을 떠난 메리 올리버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메사추세츠주 프로빈스타운에서 살며 야생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의 시 142편을 엄선해 수록한 시선집 ‘기러기’가 민승남 번역으로 국내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