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가상화폐 규제 공권력 행사 아냐”

입력 2021-11-26 04:08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 연합뉴스

정부가 2017~2018년 가상화폐 투기 근절을 위해 내놓은 대책들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 정부가 가상계좌 신규 제공을 중단하도록 하고, 가상화폐 거래실명제를 시행한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는 취지다.

헌재는 25일 변호사 A씨 등이 “2017~2018년 정부의 가상화폐 관련 긴급대책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부적법하다고 보고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각하를 결정했다.

앞서 정부는 가상화폐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던 2017년 12월 국무조정실장 주재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가상화폐 관련 긴급 대책 수립을 논의했다. 이후 금융위원회는 은행권과 가상통화 거래소에 가상계좌 신규 제공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듬해 1월 30일부터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시행하도록 조치했다.

이에 A씨 등은 헌법소원을 냈다. 금융위가 가상계좌 신규 제공을 중단하도록 해 가상화폐 거래에 차질이 생겼고, 가상화폐 교환가치가 떨어졌다는 주장이었다. 금융위는 불이익 조치를 예정하지 않아 공권력의 행사가 인정되지 않고,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시행은 범죄행위 예방 차원이었다고 반박했다.

헌재는 정부의 이런 조치가 우월적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며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정부의 조치가 자금세탁 등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금융기관에 방향을 제시하고 자발적인 순응을 유도하려는 일종의 단계적 ‘가이드라인’”이라며 “당국의 요청에 따르지 않을 경우 은행들에 행정상·재정상 불이익이 따를 것이라는 내용은 달리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정부의 조치는 규제적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재판관 4인은 “일부 은행이 수수료 등 상당 수익을 얻다가 가상계좌 신규 제공 중단 조치로 비로소 제공을 중단했다”며 “(정부의 조치는) 단순한 행정지도로서의 한계를 넘어 규제적·구속적 성격을 상당히 강하게 갖는다”고 했다. 이어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 시행 그 자체는 다른 예외나 선택의 여지 없이 정부의 조치로 강제됐다”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