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일번지 대치동… 학벌주의·부동산 부자의 ‘민낯’

입력 2021-11-25 21:35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 대치동은 1200여개 학원이 밀집한 대한민국 최대의 사교육 단지이자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 한국 사교육의 마법 같은 성과를 보여주는 곳이다. 사계절 제공

국내 최대의 학원가 서울 대치동에서 20여년간 논술 강사로 일했다는 조장훈씨의 책 ‘대치동’은 비범하다. 대치동 학원가의 깊숙한 안쪽으로 독자들을 데려가는가 하면 한참 위에서 대치동을 정점으로 한 대한민국 사교육 실태를 역사적·사회적으로 조망하게 한다. 입시 제도의 변화 과정을 따라가며 공교육과 사교육이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보여주고,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사교육과 공교육이 어떻게 협동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저자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대 후반 논술 강사로 사교육계에 발을 디뎠다. 논술·구술 강의, 입시컨설팅, 학원장 등을 하며 대치동에서 20년을 보냈다. 대치동 학원가의 핵심 구성원이었던 저자는 지난해 연말 학원판을 떠나면서 이 책을 남겼다.

책은 먼저 대학 입시 제도를 살핀다. 1994년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 97년 논술고사 도입, 2008년 입학사정관제 도입, 2013년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도입 등으로 이어진 입시 제도 개혁은 매번 나름대로 타당한 취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가장 오래 지속되는 대입 시험인 수능은 사교육비 폭증을 불러온 주범이다. 논술은 공교육이 논술 교육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 아킬레스건이 돼 축소됐다. 입학사정관제는 부유한 엘리트 계층에 점령당했다. 대입 최대 전형이 된 학종은 다수의 학생을 소외시킴으로써 “학교의 일상 자체를 경쟁의 지옥으로 바꿔놓았다.” 이제 학부모들의 의견은 과거 학력고사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시 수능 확대’라는 퇴행적 방안으로 수렴되고 있다.


저자는 입시 제도의 변화를 학벌이라는 자원을 둘러싼 계급 간 힘겨루기 과정으로 본다. “지배계층은 학벌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입시 제도의 맹점을 찾기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대치동은 학벌 자원을 획득하려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다.

대치동 학원가는 90년대 이후 부상했는데 결정적 계기는 수능이었다. 입시 제도가 다양화되고 크게 흔들리면서 학교는 여기에 대응할 수 없었다. 반면 대치동에선 소규모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학원들이 새로 생긴 전형이나 새로 생긴 입시에 대한 대비법을 제공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대치동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대치동은 강남 집값을 끌어올린 주범이다. 강남으로 강제 이주당한 명문 고등학교들이 80년대 부모들을 강남으로 끌어들였고 그들은 30년 후 부동산 부자가 됐다. 2000년대 이후엔 대치동 학원가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들은 부동산과 자녀의 학벌, 둘 다 성공하길 꿈꾼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부동산과 학벌을 좇는다. 강남, 그중에서도 대치동은 이 소득 증대를 위한 세속적 욕망의 집결지다.”

3부 ‘대치동 사람들’은 대치동의 주요 구성원과 생태계를 생생하고 밀도 있게 묘사한다.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대치동 엄마들의 불안, 대치동 전세족과 원정족의 사연, 대치동 학원가를 움직이는 상담실장들의 힘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교육이 공교육의 몰락이나 교육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주장을 적극 반박한다. 진짜 문제는 학벌주의와 학력 차별인데, 학원 사교육만 때려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립학교가 지닌 역동성이 교육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증진하고 공립학교의 개혁과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처럼 학원 사교육을 흡수해 공교육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자고 주장한다. 대치동의 입시 컨설팅 인력과 시스템을 학교 현장에 도입해 공교육의 상담과 교육 서비스를 개선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