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사 자율권 강화 ‘초점’… 대입제도 개편이 관건

입력 2021-11-25 04:03
정부가 24일 고교 수업량을 줄이고 학생 수업선택권은 늘리는 내용의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했다. 이번 교육과정은 내년 하반기에 완성돼 2024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2025년부터 중·고교에 적용된다. 사진은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이날 경기도 수원 수일고 2학년 교실의 모습. 연합뉴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을 확대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학교와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운영 자율권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가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배워야 할 내용들'을 규정하면 학교와 교사, 학생이 이를 따르는 종전 방식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다.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진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도 학생 수업 선택권을 강화하려 했으나 대학 입시와 과목 이기주의 등 현실적인 장벽으로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란 이상을 고교학점제(이하 학점제) 도입을 계기로 새 교육과정에 담았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기초학력 저하 및 사교육비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나왔다.


고교 수업 어떻게 바뀌나

교육부가 24일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에는 2025년 이후 고교 교육의 틀이 규정돼 있다. 전체적인 수업량 감축이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고교생의 졸업 요건은 204단위(2890시간) 이수다. 이를 192학점(2720시간)으로 줄인다. 교과 학점 174학점, 창의적 체험활동 18학점으로 조정된다. 1학점당 수업량도 50분씩 17회에서 16회로 감소한다. 필수이수학점(국가가 학교와 학생에게 강제하는 수업량)은 94단위에서 84점으로 줄어든다.

전체 수업량과 필수이수학점을 줄이는 조치는 학점제 도입을 위한 선행 과제다. 정부가 국가교육과정에서 세세하게 수업의 틀을 정해놓으면 고교학점제 취지는 퇴색된다. 학점제는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자신의 진로나 적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이수 과목을 결정하는 제도이므로 선택권 보장이 핵심이다.


국어·수학·영어는 현행 10단위에서 8학점으로 줄어든다. 한 과목당 수업시간이 현행 141.7시간에서 106.7시간으로 35시간씩 줄어 세 과목의 총 수업시간은 105시간 감소한다. 아울러 고교가 입시 위주 교육으로 흐리지 않도록 국어·수학·영어의 총 이수학점을 192학점 중 절반인 81학점 이상 편성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고교생은 1학년 때 필수이수학점을 주로 취득하고 2~3학년 때는 선택과목을 이수할 것으로 보인다. 1학년 성적은 주로 상대평가(석차 등급제)가 적용되고 2~3학년은 성적 부담 없이 수업을 고르도록 절대평가(성취평가)가 적용된다.


다만 수업 선택권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과목과 시험 범위에 좌우될 전망이다. 수능의 영향력이 유지되면 고교들이 수능 위주로 교육과정을 짜야 하고, 학생들도 다양한 수업보다 수능과 관련된 과목 위주로 선택하게 된다. 또한 ‘융합선택’ 과목이 신설돼 일반·진로·융합선택 체제로 바뀐다. 사회 일반선택 과목은 현행 9개(한국지리, 세계지리, 세계사, 동아시아사, 경제, 정치와 법,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에서 4개(세계시민과 지리, 세계사, 사회와 문화, 현대사회와 윤리)로 통폐합했다.

초등학생도 과목 선택

초등학생은 1학년 입학부터 한글 해득 교육을 강화한다. 저학년은 대근육 발달을 위해 주 2회 이상 신체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즐거운 생활’을 현행 80시간에서 128시간으로 늘리고, 안전한 생활 시수 16시간을 더해 총 144시간을 운영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선택과목이 도입되는 점도 특징이다. 그동안 초등학생은 공통 교육과정이 적용돼 정해진 과목만 공부했다.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과목이 있으면 3~6학년 매년 선택과목 2개씩 모두 8개 과목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한 학기를 자유학기로, 3학년 2학기를 ‘진로연계학기’로 운영한다. 학교스포츠클럽의 경우 동아리 활동으로 매 학기 운영하되 의무 편성 시간을 136시간에서 102시간으로 축소한다.

디지털·인공지능(AI) 소양 교육은 초·중·고 전체에서 강화된다. 정보 교과와 학교 자율시간을 활용해 디지털 활용 능력과 AI 기초를 학습하게 된다. 초등학교에서는 놀이와 체험을 통해 디지털과 AI와 친숙해지도록 하고, 중·고교 단계에서는 기본, 심화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생태전환·민주시민 교육은 전체 교과 내용에 반영한다. 초·중·고교의 모든 교과에 녹여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사회 수업 시간에 기후변화나 인권, 성평등, 평화 등의 가치를 담는 방식이다. 비교과 활동과도 연계해서 창의적 체험활동, 자유학기 활동에서도 하도록 했다. 생태전환교육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모든 분야에서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교육’, 민주시민교육은 ‘자기 자신과 공동체적 삶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교육’으로 정의했다.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미래 교육으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란 평가도 있지만 대입제도 설계가 안 돼 있는 등 준비 부족과 불확실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불수능’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어· 수학·영어 수업을 줄이는 것은 모순적이며, 오히려 사교육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민주시민 교육 강화를 두고는 교육과정에 특정 이념·가치를 주입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