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범죄 느는데… 손발 묶인 자치경찰

입력 2021-11-25 04:04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오전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유공경찰에게 표창장을 전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생치안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도입된 자치경찰제도가 시행 5개월이 됐지만 여전히 헛바퀴를 돌고 있다. 최근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 끝에 숨진 30대 여성의 ‘스마트워치’ 사건을 비롯해 여성·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으나 자치경찰위원회는 사실상 손놓고 있는 실정이어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정부 검·경수사권 조정의 일환으로 탄생한 자치경찰은 스토킹·가정폭력·아동학대 등 민생범죄에 대한 수사·순찰·예방 권한을 갖고 지난 7월 출범했다. 다만 스토킹처벌법의 경우에는 경찰청에서 국가사무로 유권해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는 각 일선서 등에 3700여명에 대한 임용권을 가지고 있다. 관할 사건이 발생할 경우 서울경찰청장을 직접 지휘·감독한다.

문제는 ‘관할’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자치경찰을 출범시키며 수사는 국가수사본부가, 정보·외사·경비·감사 등은 경찰청이 담당토록 했다. 하지만 관할 사건이 발생해도 이는 ‘수사 대상’이라며 국가수사본부가 사건을 도맡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의붓어머니의 폭행으로 사망한 3세 아이 사건이나 ‘스마트워치’ 건 역시 법리상은 자치경찰 사무지만 국가수사본부가 전면에 나섰다.

강동구 천호동 자택에서 3세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의붓어머니 A씨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고위 관계자는 24일 “자치사무로 볼 여지도 있지만, 수사의 일환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사무로 보는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경찰 고위 관계자는 “사실 스마트워치는 직접수사 업무는 아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예방업무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렇다보니 자치경찰에는 제대로 사건보고조차 올라가지 않고 있다. 한 일선 경찰 관계자는 “아동 폭력 사건이 발생한다고 해서 하나하나 자치경찰위에 보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활안전을 위한 순찰 규정도 마찬가지다. 순찰을 담당해야할 지구대·파출소가 112치안종합상황실 소속이어서 자치경찰위에서 지휘·감독을 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스토킹 범죄나 층간소음 사건, 가정폭력 사건 등을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많지만 지휘·명령을 발동하고 싶어도 아예 요청 권한이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홈페이지 캡처.

한편 경찰의 부실한 현장 대응을 두고 국민적 질타가 쏟아지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국 경찰에 서한을 보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필요한 물리력을 과감히 행사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우리 목표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의 보호”라며 “오늘부터 비상대응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다”고 했다.

김 청장은 “‘어떤 순간에도 경찰이 지켜줄 것이다’라는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며 “우리는 변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장 맞춤형 대응력을 최적화하고, 권총과 테이저건 등 무기 장구의 사용과 활용이 자연스럽게 손에 익도록 필요한 장비와 예산을 확대해 반복적으로 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