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조문 이틀째인 24일에도 대체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하나회’와 제5공화국 인사들의 조문 행렬은 이어졌지만, 전날과 마찬가지로 각계 주요 인사나 일반 시민들의 발길은 뜸했다.
이날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과 오일랑 전 청와대 경호실 안전처장 등 하나회 멤버들과 전두환 정권 마지막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김용갑 전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김 전 의원은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과 관련해 “전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설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당시(1987년) 6월 항쟁 정국을 방치했다가는 나라가 어려워지겠다고 판단해서 6월 18일 전 전 대통령에게 ‘내각제를 포기하고 야당이 제안하는 직선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렇게 보고하니 전 전 대통령이 ‘좋다. 그러면 특명을 내릴 테니 노태우에게 가서 설명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와 주호영 의원, 박철언 이재오 김진태 전 의원,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이문열 작가 등도 조문했다.
반 전 총장은 전씨에 대해 “여러 가지 공과에 대해 역사가 평가를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광주 민주항쟁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를 밝히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고인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일”이라며 “다만 돌아가셨으니 명복을 빌 따름”이라고 말했다. 박근령 전 이사장은 “죽음이라는 것은 용서와 화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며 “아버지와 얼마 전 작고한 노 전 대통령, 전 전 대통령 세 분이 만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가짜 박근혜 조화’가 세워졌다가 뒤늦게 철거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오전에 빈소에 도착한 박근혜 화환은 반 전 총장이 보낸 조화 옆에 세워졌다. 그러나 유족 측은 이 조화가 박 전 대통령이 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곧바로 철거했다.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해 유영하 변호사가 보낸 ‘진짜 박근혜 조화’는 오후 늦게 빈소에 설치됐다.
전씨는 생전에 박 전 대통령과 얽히고설킨 인연이 있다. 1979년 10·26 사태 직후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씨는 청와대 금고에서 찾은 6억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전씨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박정희 정권과 선 긋기에 나서면서 박 전 대통령은 한동안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날 보수 단체가 기습 설치한 전두환 분향소가 2시간 만에 철거되는 일도 있었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는 오전 6시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전씨를 추모하는 천막 분향소를 차렸다. 종로구청은 도로법 위반 등을 이유로 오전 8시쯤 분향소를 철거했다.
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해외 각국에서 한국 외교부로 보낸 조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 장례가 국가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노 전 대통령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지면서 재외공관을 통해 장례 사실을 알리는 외교 공한이 발송됐었다. 전씨 입관식은 25일, 발인은 27일 진행된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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