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차 연임’ vs ‘세대교체’… 4대 금융지주 후계구도에 쏠린 눈

입력 2021-11-25 04:03

4대 금융지주사 회장 자리를 노린 차기 레이스가 연말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사실상 현 회장 체제를 뒷받침하는 인사들로 꾸려진 사외이사들이 금융지주 회장의 ‘n차 연임’을 지지하는 사례가 대부분인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피 말리는 실적 전쟁을 치르며 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차기 주자들이 급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선 “한 번 맡으면 임기가 10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브레이크 없는 금융지주 회장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기 레이스가 가장 먼저 불붙은 곳은 하나금융이다. 내년 3월 임기를 마치는 김정태 회장은 70세 나이 제한 때문에 교체가 불가피하다. 차기 주자로는 함영주 부회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등이 오르내린다. 공교롭게 김 회장 교체 시점이 대선 일정과 맞물리면서 금융권에선 갖가지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 회장 선출 절차가 ‘정권 말, 대선 직전’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정치권 외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선이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뒤따른다.

채용 비리 관여 혐의를 받았던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 22일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오너 리스크’를 벗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심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위기에 몰렸던 조 회장이 한 차례 더 연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조 회장은 인수합병(M&A)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두 번째 연임을 위한 입지를 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정의연대는 조 회장 판결과 관련해 “부정 합격자조차 정당한 합격자로 바꿔 조 회장을 위한 맞춤형 판결을 내렸다”며 “사법부가 채용비리 수뇌부의 연임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 지적했다.

신한금융의 차기 구도로는 조 회장과 함께 사모펀드 사태 위기를 넘긴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선두에 서 있다는 분석이다. 진 행장은 신한지주의 실질적 오너그룹인 재일교포 주주 사이에서 경영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과 성대규 신한생명 사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 징계에 불복한 소송에서 지난 8월 승소하면서 한고비를 넘겼다. 완전 민영화를 통해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두 번째 연임을 위한 행보를 구체화할 전망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임기가 비교적 넉넉하게 남았다. 윤 회장은 2023년 11월까지 모두 9년 임기가 사실상 보장된 상태다. 다음 달 임기를 마치는 허인 KB국민은행장의 후임 인선 이후에야 윤 회장 후임 구도가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금융지주 회장 임기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선 이후엔 금융지주 회장 임기를 제한하는 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두 차례 연임을 통한 9년 임기 체제가 굳어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권한 비대화와 파벌 형성, 개인 비리 등의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금융권에선 장기적인 경영 전략 대신 단기 실적에만 치우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반시장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도록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 개정을 추진 중인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실효성이나 책임성 강화 문제 등을 감안해 금융당국과 법 개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