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뒤늦게 대출 재개한 은행과 책임 떠넘긴 금융 당국

입력 2021-11-24 04:02
시중은행들이 묶어놨던 가계대출을 뒤늦게 재개했다. 하나은행, KB국민은행이 어제부터 일부 대출 상품을 출시하거나 대출 조건을 완화했으며 다른 은행들도 곧 주택담보대출 등을 재개할 계획이다. 자금조달에 애먹었던 실수요자들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였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최근의 대출 대란이 금융 당국의 맹목적이고 무원칙한 자세와 은행의 이기적 처신으로 악화된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0일부터 중단했던 신용대출 상품과 비대면 대출(하나원큐 아파트론)의 판매를 23일 재개했다. 다음 달 1일부터 주담대도 다시 판매한다. KB국민은행도 이날부터 전세자금대출 방식 중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는 ‘분할 상환’ 외에 ‘일시 상환’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서민 부담 완화 차원이다. 은행들은 최근 없앴던 우대금리를 되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총량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지만 “이자 장사를 한다”는 여론의 비판에 고개 숙인 것으로 봐야 한다.

은행들은 대출 관리 정책의 최대 수혜자다. 국내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지난 9월 말 2.14% 포인트로 11년 만에 최대다. 5대 금융지주의 올 1~9월 이자이익만 31조314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2% 증가했다. 이달 초 시중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가 최대 5%를 넘고 있어 올해 전체 이자 수익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우대금리를 없애고 가산금리마저 높이는 등 탐욕마저 부리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은행 폭리를 막아달라”는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원칙도 없이 은행 행태를 수수방관한 당국도 문제다. 대출 억제를 주문, 사실상 대출금리 인상을 조장했음에도 여론의 비판에 “은행 자율” 운운하며 나 몰라라 했다. 전세자금대출을 대출 총량에 포함시켰다가 빼는 등 정책도 오락가락했다. 은행과 당국은 행여나 이번 대출 재개를 “여론의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으로 여겨선 안 된다. 향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예견된 만큼 실수요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섬세한 정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