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재 목사의 ‘생명 설교’] 감사 절기에 드리는 우리의 고백

입력 2021-11-24 03:06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도착한 곳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다. 이듬해인 1621년 첫 추수를 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도움을 준 인디언을 초대해서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눴는데 이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출발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추수감사절이 시작된 지 400년이 되는 해다.

400년 전 첫 번째 추수감사절 때의 환경과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졌다. 환경적으로 보면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해졌지만, 감사는 뒷걸음질한 느낌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첫 번째 추수감사절의 정신과 고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고백은 무엇이었을까.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출애굽 2세대에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소산을 거두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어떤 고백을 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이 고백을 통해 첫 번째 추수감사절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첫 소산을 올려드리는 자리는 조상 때부터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근으로 인해 야곱의 후손들은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굽으로 이주한다. 그들은 소수였으나 곧 큰 민족으로 성장한다. 그런 그들이 우여곡절을 거쳐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해 감사를 한다. 이것이 그들의 첫 번째 고백이다.

감사의 절기에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회복되어야 한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 전쟁의 폐허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자비와 긍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너무나 당연한 넘치는 감사의 고백을 드려야 한다.

모세는 계속해서 출애굽 2세대에게 감사 고백을 가르친다. 그것은 구원과 관계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강성한 민족이 되었으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들어섬에 따라 환난과 핍박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그의 능력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셨다. 이스라엘은 이제 새롭게 살게 될 땅에서 그 구원의 은총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고통에서 건지고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 이것이 그들의 두 번째 고백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존재를 뒤바꾼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이것만 분명히 해도 감사가 끊이지 않게 된다. 구원의 감격이 우리에게 다시금 충만해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를 드리자. 그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의 자녀의 삶을 살자.

그들의 세 번째 고백은 삶을 축복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다. 사실 그들이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은 애굽이나 그들의 조상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에 비하면 척박한 땅이었다. 그러나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 참 축복이 되려면 모든 부유함이 내 능력, 내 손, 내 노력으로 얻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회복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이렇게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리며 이제 내 것으로 움켜쥐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 이유다. 이 땅의 것을 움켜쥐고 내 것을 주장하는 추한 삶이 아니라 감사로 그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자.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그의 생명과 향기를 이 땅에 전하는 성도가 되자.

(미국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