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하면 반토막 ‘생보사 잔혹사’… 교보가 끝낼까

입력 2021-11-23 04:06

2000년대 생명보험사들이 본격적으로 상장을 준비할 때 교보생명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교보생명은 국내 생보사 중 최초로 상장을 전제한 자산재평가를 할 만큼 기업공개(IPO)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각종 이유로 상장은 번번이 무산되거나 연기됐다. 이후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2010년 상장했지만 현재 주가는 공모가의 절반 수준이다. 30년간 상장을 추진해 온 교보생명이 ‘생보사 상장 잔혹사’를 끊고 증시에 안착할지 주목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IPO를 준비하고 있다. 교보생명이 IPO에 처음 착수한 것은 1989년이다. 교보생명은 그해 3월 정부에 상장이 가능한지 질의해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생보사 중 처음으로 자산재평가도 실시했다. 그러나 1990년 12월 침체된 증시 등을 고려한 정부는 상장 유보를 결정했다.

2007년 4월 생보사 상장이 허용된 후 교보생명은 유력한 ‘1호 상장사’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상장 대신 2012년 어피너티 컨소시엄을 재무적투자자(FI)로 영입했다. 어피너티는 교보생명 지분 24%를 인수하며 2015년 9월까지 상장하지 못하면 풋옵션(보유한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업황 악화와 저금리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교보생명은 기한 내 상장에 실패했다. 수차례 상장이 보류되자 어피너티는 2018년 주당 40만9000원의 풋옵션 행사에 나섰다. 교보생명이 뒤늦게 IPO를 추진했지만 풋옵션 분쟁은 국제상공회의소(ICC)로 번졌다. 상장은 자연스레 미뤄졌다. 지난 9월 ICC 중재법원이 “교보생명이 어피너티가 제시한 가격에 매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판정을 내리며 상장 길이 겨우 열렸다.

교보생명과 함께 생보사 ‘빅3’로 불리는 삼성생명·한화생명은 2010년 상장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주가는 공모가보다도 한참 낮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공모가는 각각 11만원, 8200원이지만 22일 종가는 6만5900원, 3290원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2010년대부터 이어진 저금리 기조가 생보사의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켰다고 분석한다. 이홍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생보사는 금리민감도가 너무 높아 금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낮아 전망을 보수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손해보험사에 비해 상품성과 경쟁력이 밀린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교보생명이 성공적으로 IPO를 하면 생보사 주가가 동반 상승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